CodePoet

About

코드의 시인 (컴파일 안됨)이라고 15년차에 황금명함 받음.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의 절반은 그대에게서 왔소 — 아내.

명령 대신 질문을, 효율 대신 무용함을 가르쳐 주는 딸 윤슬.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선, 개발자이자 리더.

나는

— 불안을 신호로 바꿔 매일 쓰고 만들고 가족 곁에 머무는, 제 몫의 난중일기를 적어 가는 사람이다. 모호함 속에서도 기록과 책임으로 버틴 이순신을, 먼 별처럼 두고서.

지금의 역할은 리더지만, 어느 날은 육아하는 아빠, 어느 날은 문제를 풀려는 빌더, 어느 날은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자리가 바뀌면 쓰는 말이 바뀐다 — 같은 로그 하나를 사업은 사업의 말로, 운영은 운영의 말로, 개발은 개발의 말로 부르듯. 그러니 자리마다 하는 일은 늘 같다. 아는 것을 그 자리의 말로 옮겨 건네는 일, 번역. 역할은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 공부가 번역이라는 걸 먼저 알았고, 내가 하는 일의 이름도 번역이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 개발자로 10년쯤 살았고, 최근 정식으로 팀 리더가 됐다. 석 달간 대행으로 버티다 4월에 발령. 수업을 듣고, 좌충우돌하고, 원칙을 다시 만드는 중이다.
  • 딸아이의 아빠다. 그림 앞에서 "나는 못 그려"라고 멈추는 순간, 1+1을 천 번 반복하는 원리셈 노트 — 아이와의 일상은 내 가장 큰 교실이다.
  • CodePoet 이라는 이름으로 코드를 쓰고 글을 쓴다. 도메인은 codepoet.me. 이 공간은 그중 에세이 쪽이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그걸 신호로 볼 뿐이다 — 같이 걷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든 배우려 한다. 누군가를 마주하면 내 모자란 곳부터 먼저 보고, 고치고, 반성하고, 한 뼘이라도 나아지려 한다. 이 마음의 허기를 채워 갈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가장 좋아하는 건 누군가의 진지한 꿈 얘기를 듣는 일이다. 무언가에 몰입해 있는 사람의 모습, 그 열기. 그걸 보면 궁금해진다 — 이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건 뭘까.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가. 왜 김광석에, 왜 퀸과 비틀즈에, 왜 인셉션에, 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그리고 그 곁에 아쉬움이 하나 따라붙는다. 왜 내게는 저런 게 없지. 그 왜를 따라 내려가면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행복하면 다 된 거다.

세 축 — 수신·제가·치국

글은 이 세 축 안에서 자란다. 축이 고정이지, 역할은 고정이 아니다. 지금은 리더지만 내일은 그냥 호기심 많은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 그래도 이라는 축은 그대로다.

  • (수신): 자립·삶·배움. 혼자 서려 했던 길이 결국 다같이 잘하는 법이었다는 아이러니. (→ 「내 게임을 만들기 위해」 7편, 번역기→LLM의 한 줄.)
  • 가족 (제가): "아직"이라는 단어가 아이에게 닿는 데 걸리는 시간. 원리셈 노트를 보며 배움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
  • (치국): 리더는 모호함과 싸우고, 불편함을 마주하고, 사람을 챙기는 자리다. 역할이 무엇으로 바뀌든 내 업은 같이 간다. end image, 네 가지 챙김, 디렉션 = 조직의 gradient descent.

한 글은 두 축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 아이의 학습을 보며 내가 배운 이야기는 이자 가족이다.

쓰는 이유

최근 통과해 온 것들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고 싶었다. 처음엔 욕심이었다 — 언젠가 내 딸이 이 글을 읽고 아빠는 이렇게 살았구나, 아내와 부모님이, 나와 함께였던 이들이 그 사람은 이랬구나 하고 나를 온전히 알아주기를. 다른 방도로는 전할 수 없는 결을, 문장으로라도 남겨 이해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 욕심을 부리다 도리어 깨달았다. 정작 닿고 싶은 곳은 따로 있었다는 걸 — 나와 같은 자리에 떨어진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와 도움. 어차피 세상은 저마다 홀로 고독한 것이니까, 그 고독 곁에 한 줄이라도 놓아두고 싶어서 쓴다.

비슷한 시기에 《과학고생존일지》를 읽으며 꼭 그런 위로를 받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듯한 작가가 제 감정을 그렇게 승화시킨 데 크게 놀랐고, 동시에 내가 부끄러워졌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다 — 내가 겪은 무언가를 다른 사람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진실되게 와닿았다. ▶️ 보민 스님이 고백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도 그 마음에 겹쳤다. 부끄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의 말은, 신기하게도 듣는 이를 다그치지 않고 다독인다. 광고도 협찬도 아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한 줄이고 싶어서 적어 둔다.

쓰지 않으면 내가 뭘 배웠는지 잊어버린다. 어떤 생각은 글이 되기 전에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공개로 쓰는 건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이 정확함을 당긴다.

당신이 가는 길에, 내 글이 한 줌의 도움이 되기를.

읽는 법

  • 위 GNB의 나 / 가족 / 업을 누르면 그 축에 속한 글만 모아 볼 수 있다.
  • 한 글은 두 축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 — 그런 글은 두 군데에서 모두 보인다.
  • Collections에는 연재가 모여 있다. 지금 공개된 건 「내 게임을 만들기 위해」(7편) 한 시리즈, 프롤로그부터 읽으면 맥락이 이어진다.

연락

최종 수정: 2026-09-01

dev · 2026.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