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모호함과 싸우는 자리다
00 · 프롤로그 —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다
1월부터 리더 부재 상태가 이어졌다. 공식 발령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방향을 정해야 했다. 나는 "대행"이라는 임시 명찰을 달고 1, 2, 3월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행을 시작했다. "어떻게 리더를 해보겠다"는 그림 같은 건 없었다. 1년 동안 빵꾸나 내지 말자, 이전 리더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열심히 하자 — 그게 전부였다. 이전 리더가 했던 거의 모든 걸 본받고 싶었다. 그 사람은 내가 자라고 싶은 방향으로 시간과 여유와 업무 롤을 배정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즐겁게 일했고 NDC에서 두 번 발표했고 원하던 새 기술들을 배웠다. 서로 윈윈이었다. 그래서 "내가 맡아도 최소한 이 리듬은 이어가자" 그 정도만 생각하고 시작했다.
작업자였을 때 나는 리더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 모름을 모른 채로 대행을 시작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상태. 그게 석 달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유닛의 업무 비중과 우선순위가 완전히 달라졌고, 리더를 해본 적 없는 내가 여섯 팀이 소집된 TF를 끌어야 했다. 코어, 프론트, 시스템기획, 백엔드, 퓨처, PM, CX. 업무 프로세스를 모른 채로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혼자 머릿속에 정답지를 그리며 좌충우돌했다. 상위권자에게 컨펌받을 타이밍에 우물쭈물했고, 팀원 각자가 End Image로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맞춰 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뭘 하라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죠?"
팀에게 매일 돌아온 세 문장은 그 좌충우돌의 증상이었다. 처음엔 팀원의 이해력을 탓하고 싶었다. 두 번째 달에는 내 설명력을 탓했다. 세 번째 달이 되어서야 알았다. 문제는 둘 다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모호한 것을 모호한 채로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혼자 정답지를 그리느라 선택지를 빠르게 줄여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더 뼈아픈 건 다음이었다. 나는 이미 바뀌었다고 믿고 있었다. 몇 년 전의 나보다는 팀원 말을 듣는 사람이라고, 그 정도의 자기 갱신은 이미 해냈다고. 그 믿음이 가장 컸던 착각이었다. "의견을 모아 보자"고 해놓고, 의견을 낸 사람을 중심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실은 내 결론을 확인받고 있었다. 의견을 묻는다는 포장 아래 내 생각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사이 어떤 팀원은 소외감을 느꼈고, 어떤 팀원은 "이게 맞는 방향인가" 의구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4월. 1년짜리로 시작한 대행은 석 달 만에 끝나고, 정식 리더 발령이 났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연말까지 우리 유닛과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명찰과 함께 따라왔다. 내 판단 하나, 내 방향 하나, 내 의사결정 하나가 지금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뒤에서 따라오던 세 질문은 이제 내 앞에 서 있다. 피할 자리가 아니라 답해야 할 자리다.
이 글은 그 석 달에 대한 회고이자, 남은 아홉 달의 출발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나, 좌충우돌한 실제의 나, 그 사이에서 고쳐져야 할 것,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모호함 — 그 순서로 쓴다.
01 · 본질 — 리더는 모호함과 싸우는 자리다
IC(Individual Contributor)는 정의된 문제를 받는다. 리더는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정한다. 이 한 줄의 차이가 하루의 모양을 바꾼다.
IC에서 리더로 넘어갈 때 딱 하나만 바뀌는 게 아니다. 다루는 대상, 시간의 쓰임, 성과의 정의가 같이 움직인다. 아래 슬라이더를 움직여 보라.
석 달 동안 나는 슬라이더를 절반쯤 걸쳐 놓고 살았다. 낮에는 내 문제를 풀고, 밤에는 남의 문제를 고민했다. 어느 쪽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가장 힘든 건 시간 부족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느 쪽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상태였다.
02 · 얻어맞음 — R&R, What, Why · 세 결핍의 증상
석 달 동안 실무에서 하나씩 얻어맞으며 배운 것이 있다. 팀원이 던진 세 질문은 각각 세 가지 결핍의 증상이었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죠?"는 R&R이 불명확할 때 나온다. 같은 일을 두 사람이 쳐다보거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때. 경계선이 없으면 사람은 움직이기 전에 멈춘다.
"뭘 하라는지 모르겠어요."는 What이 불명확할 때 나온다. "이거 좀 봐주세요"와 "금요일까지 A/B 시나리오 비교 1페이지로 정리해 주세요" 사이의 거리는 팀의 에너지 낭비량과 정확히 비례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는 Why가 빠졌을 때 나온다. 왜 하는지를 모르면 지시는 번역되지 않는다. 팀원은 기계가 아니라서, 맥락 없이 받은 명령을 알아서 재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으로 돌려보낸다.
석 달 내내 나는 이 세 결핍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원인을 분석하기 보단, 매주 다음 회의를 마주하느라 윤곽만 어렴풋이 보였다.
03 · 언어 — 겪은 것에 이름이 붙는 순간
4월 14일, 박태현 강사의 신임리더 교육에서 들은 한 마디에 석 달이 정리되는 느낌이 왔다. "리더는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교육에서 받은 프레임은 많았지만, 이 회고를 쓰는 데 꼭 붙들어야 할 건 셋이었다. End Image — 결과물의 모습을 먼저 한 문장으로 그리는 일. 사전공유 — 그 문장을 팀이 같은 해상도로 갖게 하는 일. 그리고 교육에서 받은 가장 뼈아픈 한 문장.
리더가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수면 상태에 들어가고,
리더가 질문하는 순간, 상대방이 깨어난다.
이 한 문장이 석 달의 내 행동을 거의 설명했다. 그리고 배움이란 새 지식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겪은 것에 이름이 붙는 일이라는 걸 이 때 알았다. 석 달간 내가 앓던 것들이 End Image의 부재, 사전공유의 결핍, 말로 덮어 팀을 재운 시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이 붙은 것은 다룰 수 있다.
수업에서 받은 프레임 전체 — 네 가지 챙김, 피드백, 약속, 평가, 불편함, 업무의 네 성격 — 는 별도 노트로 정리해 두었다. 신임리더 수업 노트. 이 에세이에서는 그 프레임들이 나라는 한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만 쓴다.
04 · 챙김 — 리더는 챙기는 사람이다
신임리더가 가장 오해하기 쉬운 말은 "리더 = 지시하는 사람"이다. 교육에서, 그리고 석 달의 경험에서 내가 고쳐 쓴 문장은 이것이다. 리더는 챙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챙김의 도구는 지시가 아니라 질문이다. "이거 이렇게 하세요"는 상대를 재우고, "어떻게 풀 생각이세요?", "혹시 막힌 곳이 있으세요?", "제가 도울 게 있을까요?"는 상대를 깨운다.
챙김을 어디에 쓰는가 — 네 영역으로 나뉜다는 건 수업 노트에 정리해 두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자주 놓친 한 영역, "사람"으로 바로 내려간다. 아래 여섯 장면은 석 달간 내가 반사적으로 꺼낸 말(왼쪽)과 꺼냈어야 할 질문(오른쪽)이다.
왼쪽은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고, 오른쪽은 한 번 더 멈추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 사이의 2초가 리더의 자리다.
05 · 회고 — 원했던 나, 실제의 나
에세이의 절반은 감정의 표출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가 했어야 할 일의 목록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 글이 한 번 읽히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분기의 나를 움직이는 장치가 된다. 회고 없이 반복되는 석 달은 두 번 오고, 세 번 온다.
회고 전에 상황 하나를 적어 둔다. 우리 유닛이 해야 할 일은 AX였고, 아무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전제인 AI를 다루는 역량이 구성원 전반에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의 AI 코딩 비용 지원이 4월에야 전사로 풀리며 타이밍 좋게 환경이 갖춰졌다. 대화 이전에 교육이 먼저 필요한 국면이었다. 이 맥락을 빼고 "실제의 나"만 말하면 절반만 정직해진다.
내가 되고 싶었던 리더 — 모호함을 명확함으로 바꿔 주는 사람. 팀이 안심하고 달릴 수 있게 End Image를 먼저 그려 주는 사람. 윗선과 팀 사이의 믿을 만한 통역자.
석 달 동안 실제의 나 — 모호함을 해석만 해서 내려보낸 사람. 팀에게 세 질문을 자주 돌려받은 사람. 내 머릿속엔 그림이 있었지만 바깥으로 꺼내 주지 못해, 그 그림을 팀의 언어로 옮기는 데 매번 긴 시간을 쓴 사람. 그리고 가장 뼈아픈 한 줄 — 이미 바뀌었다고 믿으면서, 여전히 내 결론을 팀에게 밀어 넣으려 한 사람. 의견을 묻는다고 믿으면서 실은 내 답을 확인받으려 했던 사람.
간격의 정체 — 이 둘 사이의 간격은 태도의 문제도, 자질의 문제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무지와 환경의 문제였고, 일부는 습관의 문제였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몰랐고, AX라는 새 국면은 누구의 기존 경험으로도 설명되지 않았고, 그 불균형을 메우기 전에 매주 다음 회의가 찾아왔다. 되고 싶었던 리더가 가진 기본 동작이, 실제의 나에겐 아직 반복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분기는 네 가지를 반복할 생각이다. 선언이 아니라 반복할 동작으로 적는다.
하나. 모호함의 구체화. 모호함은 위에서 내려와 내 앞에서 멈춰야 한다. 모호한 채로 아래로 흘려보내는 순간, 세 질문이 돌아온다. 멈추려면 멈출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 End Image와 사전공유.
둘. 불편함에 익숙해지기. 불편함은 훈련된다. 편한 쪽으로 회피하는 하루가 쌓이면 팀 전체가 불편해진다. "불편한 대화 하나를 미루지 않은 날"을 달력에 체크하기로 했다.
셋. 가안을 들고 간다. 결정권자를 만나러 갈 때 빈손으로 묻지 않는다. "뭘 해야 할까요?"와 "저는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맞습니까?"는 돌아오는 답의 해상도가 다르다.
넷. 말 대신 질문으로 내린다. 팀에게는 결론을 가져가지 않는다. 질문을 가져간다. "어떻게 풀 생각이세요?"가 "이렇게 하세요"보다 먼저 나오는 날이 리더의 날이다.
모호한 질문에는 모호한 답이 돌아온다.
구체적인 가안에는 구체적인 수정이 돌아온다.
이 넷은 맞물려 있다. 모호함을 구체화하려면 윗선에 찾아가야 하고, 그게 불편하고, 그 불편함을 이기려면 가안이 있어야 한다. 가안이 없으면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발걸음이 무거우면 모호함은 다시 팀으로 내려간다.
06 · End Image — 분기 말, 나는 어떤 리더인가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내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돌려보냈다. 나는 팀에게 End Image를 요구하면서, 정작 내 자신의 End Image는 한 번도 말로 그려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석 달간의 가장 큰 모호함이었다.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은 나 자신에 대한 End Image다. 모호하지 않은 문장으로,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적어 본다. 분기 말에 이 에세이를 다시 열어 하나씩 체크할 수 있도록.
End Image는 두 축으로 쪼갠다 — 업무 목표 (무엇을 이룰 것인가)와 역량개발 목표 (무엇을 익힐 것인가). 아래 아홉 줄에는 두 축이 섞여 있다.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것과 내가 스스로 느껴야 하는 근력 사이를 오간다. (업무 성격에 따라 End Image가 칸마다 다르게 쓰여야 한다는 2x2 틀은 수업 노트에 있다.)
3개월 뒤 — 이것들이 참이면 나는 성장한 것이다
- 팀원이 나에게 세 질문을 던지는 빈도가 "한 주에 한 번 미만"으로 줄어 있다.
지표: "뭘 하라는지 모르겠어요"가 들리는 주 수 / 분기 총 주 수 - 매주 최소 한 번, 가안을 들고 결정권자를 찾아간 기록이 있다. 빈손으로 찾아간 경우는 없다.
지표: 주간 1on1 전 "가안 초안" 문서 개수 - 1on1과 스쿼드 회의 첫 3분 동안 내가 말한 시간이 30% 미만이다. 나머지 70%는 질문과 듣기다. "이렇게 하세요"보다 "어떻게 풀 생각이세요?"가 먼저 나온다.
지표: 회의 녹음 셀프 체크 — 내가 말한 시간 / 전체 시간 (첫 3분 기준) - 불편한 대화 — 피드백, 재확인, 반대 의견 — 를 미룬 주가 분기 전체의 20% 미만이다.
지표: 주말에 "이번 주 미룬 대화" 한 줄 적기 - 분기 초 합의한 End Image 문서가 팀원별로 존재하고, 분기 말 평가 때 그 문서를 펼쳐 놓고 대화할 수 있다.
지표: 팀원 수 == End Image 문서 수 - 주 1회 이상 준비된 피드백(노트에 미리 적고, 지지적/교정적 구조가 분명한)을 팀원에게 전달한다. 긍정 : 부정 비율이 분기 평균 3:1 이상이다.
지표: 피드백 노트 기록 수 + 긍·부 태그 집계 (분기 말) -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실제의 나와 되고 싶었던 나 사이의 간격이 석 달 전보다 짧아져 있다.
지표: 다음 회고 에세이를 쓸 수 있을 만큼의 변화 - 질문 근력 — 말 대신 질문이 자동 반응이 된다. "어떻게 풀 생각이세요?"가 "이렇게 하세요"보다 먼저 입에서 나오는 빈도가 명확히 늘었다.
지표: 월 1회 1on1 녹음 셀프 리뷰에서 질문 : 지시 비율 - End Image 근력 — 새로운 일이 내려오는 순간, 마지막 결과물의 모습을 한 문장으로 그려 보는 것이 반사 반응이 되어 있다. 그려지지 않으면 다음 행동이 멈춘다.
지표: 일 받은 직후 End Image 한 줄을 적어 둔 기록 수 (주간 로그)
아홉 개 중 여섯 개 이상이 참이면 분기 합격이다. 아홉 개 모두 참이면 다음 분기의 End Image를 더 높게 그린다. 여섯 미만이면 이 회고를 같은 형식으로 한 번 더 쓴다. — 회고를 성장 장치로 쓴다는 건, 쓴 글을 다음 분기에 펼쳐 볼 수 있는 형식으로 남긴다는 뜻이다.
07 · 현재진행형 — 아직 풀리지 않은 것
여기까지가 교육 이틀 뒤의 정리다. 그런데 글이 매끄럽게 닫히지 않는 이유가 하나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답을 모르는 문제를 들고 있다. 솔직히 그대로 적어 둔다. 분기 말에 다시 읽을 때 이 대목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보려고.
우리 유닛이 끌고 있는 AI 관련 TF가 있다. 나는 게임을 선언형으로 만들어서 파일/폴더 구조에 떨어뜨리고, 그 구조 자체로 게임이 실행되게 하는 방향을 잡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 — AI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형태고, 그 결과물이 그대로 학습 데이터셋으로 재활용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본 결정이다.
팀원 한 분이 다른 안을 들고 온다. "MCP tool로 하면 안 되나요? 이걸로도 동작은 다 하잖아요." 맞는 말이다. 동작은 한다. 단기 성과도 비슷하게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장기의 비용을 본다. 지금은 같아 보여도, 6개월 뒤에는 학습 가능성의 차이가 몇 배로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안은 안 됩니다"라고 말해 왔다.
여기서 내 내면이 시끄러워진다. 나는 방금까지 "말하지 말고 질문하라, 구성원 의견을 수렴해 가안을 만들라, 독단은 조용히 팀으로 내려가는 모호함의 또 다른 포장이다"라고 써 놓고, 정작 이 주제는 독단으로 정하고 있다. 상위권자에게도 이 결정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스스로 내린 핑계는 이렇다 — "똑같이 성과는 낼 거고, 방식 차이일 뿐이다. 굳이 올릴 영역은 아니다."
이게 핑계인지, 아니면 리더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기준을 세우는" 영역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기준은 내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도 맞고, 모호한 상황에서 선택지를 빠르게 줄여 주는 게 리더라는 것도 맞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팀에게 뭘 물어야 할지 —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도가 맞는 질문인지 — 내 머릿속에는 이미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how"가 있다 보니 질문이 자꾸 확인받기로 변한다.
이 섹션은 답이 아니라 상태다.
분기 말에 다시 열었을 때 이 문단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 혹은 여전히 같은 모호함에 머물러 있는지 — 가 이 에세이가 성장 장치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 적어도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숨기지 않고 적었다.
— 위 문단을 쓰고 한 번 더 생각이 움직였다. 같은 섹션에 이어 적는다.
뭐로 만들든 결과는 나오는 영역이다. 그 영역까지 상위권자의 컨펌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잠정 결론짓는다. why와 what은 정렬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how는 리더의 재량이자 책임이다. 내가 팀원이었을 때 how는 내가 알아서 했듯이, 지금도 결과가 나오는 how는 내가 감당할 일이고, 결과의 품질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위권자에게 가져가야 할 것은 선명해진다. 그들이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황만 가져간다. 즉 why와 what이 정렬이 필요한 지점. how까지 들고 가는 것은 상위권자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자, 내 책임 범위를 위임하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이 선이 맞다고 본다. 이것도 주관이고, 분기 말까지 유지될지 또 뒤집힐지는 모른다. 그래도 오늘 이 선 위에서 나는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08 · 주관의 자리 — how로 보이던 것이 실은 what이었다
하루 뒤 이 글을 다시 열었을 때, §07의 결론이 반만 맞다는 걸 알았다. "how는 내 재량이다"라는 문장은 모든 영역에 같은 강도로 적용되지 않는다.
성숙한 영역에서는 맞다. 암묵적 품질 합의가 이미 조직에 깔려 있어서 how를 위임해도 결과가 나온다. 내가 지금껏 봐 온 리더들이 how에 관심 없어 보였던 건 방임이 아니라, 이미 정돈된 것을 안 건드린 것에 가까웠다.
미성숙한 영역은 다르다.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AX 같은 자리에서는 how 자체가 전략의 일부가 된다. "MCP tool로 하면 안 되나요"와 "선언형으로 파일 구조에 떨어뜨린다" 사이의 거리는 "동작은 둘 다 한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6개월 뒤 학습 데이터셋 재활용 가능성에서 갈린다. 이건 how로 보였지만 실은 what의 품질 기준이었다.
그럼 주관은 어디에 쓰는가. 같은 주관이라도 how에 밀어 넣으면 독단이 된다. what의 기준으로 올리면 리더의 일이 된다.
어제의 대화를 다시 써 본다.
어제 한 말. "MCP tool 말고 선언형으로 해 주세요." — how를 강요하는 말이다. 팀원의 판단을 빼앗고, 내 머릿속 그림을 확인받으려 한다. §00에서 내가 반성한 바로 그 장면이다.
다시 쓴 말. "결과물이 학습 데이터셋으로 재활용 가능해야 합니다. 6개월 뒤 재학습이 안 되는 경로는 탈락입니다." — what의 기준을 세우는 말이다. MCP tool이 그 기준을 통과하면 써도 되고, 통과 못 하면 팀원 스스로 탈락시킨다. 판단이 팀원에게 돌아간다.
주관을 how에 내려놓으면 독단이 되고,
what의 기준으로 올려놓으면 리더의 일이 된다.
이건 수업 노트 §07에서 말하던 평가의 원리와 같다. 리더는 공이 던져진 뒤에 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기 전에 스트라이크 존을 정의하는 사람이다. 기준이 먼저 공동의 합의가 된 다음에야 공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야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가 문제가 된다.
사람은 바꿀 수 없다. 나도 내 결대로만 일하고 싶다는 편향을 안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한 이유, 내 방향과 맞는 몇몇과만 일하고 싶은 이유도 안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건 성격과 성향이지, 팀이 함께 서명한 약속은 아니다 (수업 노트 §06 약속). 내 주관이 내 머릿속에만 있으면 그것은 취향이고, 그대로 how에 내려가면 독단이고, what의 품질 기준 — 팀이 함께 합의한 핵심행동 — 으로 올라갈 때에야 비로소 팀의 것이 된다.
AI를 중심에 놓고 일하는 앞으로의 국면에서, 이 구분이 더 중요해진다고 본다. 도구가 빠르게 바뀌니까 how에 매달리면 리더가 매번 구식이 된다. 기준을 먼저 세우면 도구가 바뀌어도 품질이 유지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자주 돌아가야 할 질문은 이거다 — 지금 이 장면에서, 내 주관은 how에 있는가, what의 기준에 있는가.
오늘까지의 결론은 한 줄이다. 주관은 빠질 수 없다. 어디에 두느냐만 선택할 수 있다.
닫으며
에세이의 절반은 감정의 표출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한 End Image이다.
월요일 아침에 한 가지만 바꿔 본다. 일을 주기 전에 End Image를 한 문장으로 먼저 그린다. 그 문장이 그려지지 않으면 팀원에게 넘기지 않고, 대신 종이 한 장짜리 가안을 들고 결정권자를 먼저 찾아간다. 틀린 가안은 수정당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니까.
리더는 모호함과 싸우는 자리다. 그 싸움에서 쓸 수 있는 무기는 많지 않다. End Image, 사전공유, 가안, 말 대신 질문,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한 번의 발걸음. 이 다섯이 지금까지 내가 가진 전부다. 이 중 가장 오래 가장 자주 잊는 건 넷째다. 말하는 쪽이 늘 편하니까.
그리고 이 글은 분기 말에 다시 열 것이다. §06의 아홉 줄을 하나씩 체크하고, 간격이 얼마나 줄었는지 본다. 줄어 있으면 다음 End Image를 더 높게 그린다. 줄지 않았으면 무엇이 막았는지 다음 회고에 적는다. 글은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가 되도록 나 자신을 끌어당기는 고리가 되어야 한다.
박태현 강사는 수업 마지막에 두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나도 이 글의 마지막에 그 두 질문을 그대로 붙여 놓는다. 다시 읽을 때마다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수업의 프레임 전체는 신임리더 수업 노트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