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은 쏟아지는데 아무도 못 받는 풍경
결과물이 쏟아진다
자리에 앉으면 산이 쌓여 있다. 어제 밤사이 누군가 — 사람도 있고 AI도 있고 — 만들어낸 것들이 슬랙 채널마다 대시보드마다 노션 페이지마다 올라와 있다. 이미지, 문서, 요약, 분석, 초안. 양이 많고 속도가 빠르다.
처음엔 압도된다. 그다음엔 익숙해진다. 그다음엔 이상해진다.
받는 자리가 비어 있다
이상한 자리가 한 군데 있었다. 그 결과물을 받아서 다음 일로 만드는 자리. 누군가는 봐야 하고, 누군가는 골라야 하고, 누군가는 자기 작업의 입력으로 들이밀어야 한다.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다는 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보긴 본다. 좋다 나쁘다 코멘트도 단다. 다만 그게 다음 일이 되지 않는다. 결과물은 결과물 자리에 머무르고, 다음 자리는 다음 자리대로 비어 있다. 둘은 같은 회의실 안에서 따로 굴러간다.
그 빈자리의 이름
이게 무슨 풍경인지 한참 이름이 안 잡혔다.
"의사결정이 안 된다"는 아니다. 의사결정은 따로 이루어진다. "퀄리티가 낮다"도 아니다. 결과물의 퀄리티는 사실 충분히 좋을 때가 많다. "협업이 안 된다"는 너무 뭉뚱그린 말이라 진단으로 쓸 수 없다.
가장 정확하게 말하면 — 출력은 있는데, 그 출력이 어떤 형태로 다음 사람에게 가야 하는지가 비어 있다. 받는 사람마다 다른 형태가 필요한데, 그 형태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출력은 모두에게 보이지만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자리에 머문다.
결과물은 쏟아지는데, 아무도 못 받는다.
누군가는 받고 있더라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옆자리 어딘가에서 — 디자이너 한 명, 운영팀 한 명, 시니어 한 명 — 그 결과물을 받아서 다시 쓰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다시 정리해서, 자기 팀이 쓸 수 있는 형태로 옮기고 있었다. 시간이 꽤 들었다. 회의에서는 보고가 안 됐고, 캘린더에는 안 적혔다. 그 행위 자체에 이름이 없었다.
이름 없는 행위는 가치로도 안 잡힌다. 안 보이는 데서 일이 두 번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처음 의문이 생겼다.
결과물이 일인가. 아니면 결과물을 받아서 다음 사람이 쓸 수 있게 만드는 그것이 일인가.
답을 바로 내리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 결과물 자체는 아직 일이 아니다. 적어도 조직 안에서는. 결과물은 재료이고, 그 재료가 누군가의 작업 단위로 들어가야 비로소 일이 된다.
그렇다면 그 재료를 작업 단위로 옮기는 행위가 일이라는 뜻이다. 그 행위에 이름이 없으면, 일이 절반만 보이는 채로 굴러간다.
그 자리에 들어가 봤다
이름 없는 자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누가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고 싶었다. 결과물을 받아서 다시 쓰는 그 손이 무엇을 더하고 있는지.
며칠 그 자리에 머물렀더니,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다음 편에서 그 이름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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