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이 태어났다 — 2026년 5월, 에이전트 경제의 첫 달
01 · 관찰 — 한 달 안에 동시에 결정된 것들
한 선배와 근래(올해 3월~5월) 주고받은 카톡을 다시 읽어보았다. 회사 일이 너덜너덜해서 "패잔병 같다"고 말하던 4월에서, 5월의 한 주로 넘어오는 사이에 다른 화면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일에서 끙끙대는 동안, 바깥에서는 빅테크가 한 달 안에 동시에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한 줄로 묶이지 않으면 그냥 뉴스 더미지만, 묶이면 가설이 된다. 날짜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 날짜 | 사건 |
|---|---|
| 2 / Feb | Stripe가 x402 프로토콜을 통합. HTTP 402 응답을 결제 트리거로 쓰는, '코드가 코드에게 돈을 내는' 표준. |
| 4 / Apr | Coinbase Agent.market이 x402 위에서 활성 에이전트 6.9만, 누적 1.65억 건 거래를 기록. 인간이 아닌 거래 주체가 통계의 한 칸을 채우기 시작. |
| 4/29 | Visa의 stablecoin 정산 연환산 70억 달러. 전통 카드망 위로 코인망이 본격적으로 얹히는 시점. |
| 5/5 | Google Cloud × Solana가 Pay.sh 공개. Gemini와 BigQuery에 붙은 에이전트가 stablecoin으로 결제하는 표준 결제망. |
| 5/7 | AWS Bedrock AgentCore Payments 공개 — Coinbase, Stripe 협업. AWS도 같은 방향으로 들어옴. |
Coinbase 핵심 멘트: "인터넷 거래 주체가 곧 인간보다 AI 에이전트가 많아진다."
세 곳이 따로 떠들면 우연이지만, 한 분기 안에 다 같이 들어오면 그건 결제 인프라 차원의 합의다. 모두가 어떤 종류의 거래 주체를 가정하고 있다 — 더 이상 사람이 아닌, AI 에이전트라는 거래 주체.
02 · 가설 1 — AX는 사모펀드의 새 출구 전략이다
Hypothesis 1 — 앞으로 5년, 가장 큰 돈은 'AI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아날로그 산업을 AI로 변환해 되파는 회사'에서 난다.
사모펀드는 원래 회사를 사서 비용을 깎고 다시 파는 사업이었다. 요즘 그 모델이 한 번 더 진화했다. 노동집약적인 구시대 회사를 인수해 AI로 생산성을 끌어올린 다음 되판다 — 이른바 AX(AI Transformation).
이 가설이 맞다면 다음이 따라온다: 아날로그 산업이 많은 곳, 다시 말해 한국·일본·동남아의 제조·물류·시니어케어·의료가 향후 가장 큰 노다지가 된다. 변환만 하면 마진이 올라가는 자리 — AI를 잘 쓰면 이익률이 오르고, 이익률이 오르니 다음 매물 인수에 다시 돈이 들어간다.
여기서 한 번 더 따라오는 결과가 있다. 기존 인력은 자르고, AI 엔지니어를 새로 뽑는다. 이건 잔인하지만 모델 위의 차익 거래라서, 펀드 입장에선 안 할 이유가 없다.
03 · 가설 2 — 엔지니어의 미래는 '번역가'다
Hypothesis 2 — 회사의 엔지니어는 점점 팔란티어 FDE 같은 역할로 수렴한다 — AI + 해당 도메인을 통섭한 사람만 남는다.
AI 자체의 기술 난이도는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다. 누구나 같은 모델 API를 부른다. 차이는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에서 난다.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AI 회계사를 못 만든다. 간호를 모르는 사람이 AI 간호사를 못 만든다. 결국 남는 자리는 둘 다 잘 아는 사람 — 변리사 같은 통섭형이다.
이게 무서운 건, 그 통섭의 자리를 결국 한쪽만 차지한다는 점이다. 엔지니어가 도메인을 배우는 길, 그리고 도메인 전문가가 AI를 다루는 길 — 둘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멈춰 있으면 그 자리는 다른 쪽이 가져간다. "공부를 본인이 결국 해야 한다"는 말이, 한 사람의 게으름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가 강요하는 조건이 된다.
"AI는 매직이 아니다.
번역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다."
04 · 가설 3 — 자전 순환 루프 · 자본의 회전목마
Hypothesis 3 — AI capex 사이클은 자기를 먹고 도는 루프다. 데이터센터 → 메모리 → CPU → 전력 → 구리 → 다시 데이터센터. 터지기 전까지는 거품이 아니다.
빅테크가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HBM·NAND가 필요하다 (메모리 리레이팅). 그걸 꽂으려면 CPU/GPU가 더 필요하다. CPU를 돌리려면 전력이 필요하다. 변압기와 그리드가 모자란다. 전력을 보내려면 구리 수요가 폭발한다. 그렇게 깔린 데이터센터는 다시 더 많은 추론을 돌리고, "더 많은 토큰"을 요구하며 첫 단계로 회귀한다.
자가발전 루프처럼 보이는 건, 각 단계가 다음 단계를 채워주지 못하면 거기서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쪽만 오르고 한쪽은 멈춘다는 시나리오는 논리적으로 잘 안 맞는다 — "구리는 오르는데 데센은 안 된다"는 모순이다.
이 루프의 위험 신호는 어디서 오는가? — 기업 실적 시즌에 투자 금액만큼 이익이 안 나오는 순간이다. 지금까진 삼성·하이닉스의 이익이 엄청나다. 그러니 루프는 멈출 이유가 없다. 생태계 안에 돈이 남으면, 그 돈은 결국 같은 생태계에 다시 들어간다. 유리기판이 필요한 회사가 돈이 있으면 유리기판을 만드는 회사에 투자한다. 나쁜 일이 아니다 — 터지기 전까지는.
05 · 가설 4 — 비대칭의 종 · 한국에 남는 돈은 어디로 가는가
Hypothesis 4 — 같은 사이클 안에서 NVIDIA의 이익은 자기 다음 종을 키운다. 삼성·하이닉스의 이익은 한국 안에서 다음 종을 키울 자리에 닿지 않는다 — 부동산으로, 외국인 주주에게로, 다시 미국 주식으로 빠져나간다.
§04의 루프는 글로벌 그림이다. 그 안에서 한국이 차지한 자리를 다시 보면, 같은 사이클이 양쪽에 다르게 작동한다는 게 보인다.
NVIDIA가 1달러를 번다. 그 돈은 다시 NVIDIA의 다음 사이클로 돌아간다 — TSMC에 다음 칩을 미리 주문하고, 삼성·하이닉스에 다음 메모리를 미리 사두고, 갓 자라는 AI 회사들 지분을 사고, AI 개발 도구와 클라우드를 더 키운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구조다.
삼성·하이닉스가 1달러를 번다. 그 돈은 어디로 가는가. 가장 큰 덩어리는 공장과 장비다 — 다음 세대 메모리 공정, 새 노광 장비. 이익은 크다. 다만 그 자리는 결국 NVIDIA의 다음 부품을 만드는 자리다. 같은 골목에 한 번 더 들어가는 일.
그 다음은 임직원 보너스다. 한국 가계자산의 8할이 부동산이라는 구조 위에서, 보너스 상당분이 수도권 아파트로 들어간다. 일부는 다시 미국 주식·ETF를 사며 달러로 나간다.
배당의 절반은 외국인 주주에게 간다 — 삼성·하이닉스 모두 외국인 지분이 절반 안팎이다. 회사가 사들이는 자사주도 결국 외국인이 거두며 같은 길을 간다.
그러고 나면 한국 안에 실제로 남는 건 세 자리다. 다시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돈, 정부가 거둔 세금, 그리고 부동산. 셋 다 한국의 AI 회사·소프트웨어 생태계로는 잘 흐르지 않는다.
비대칭의 본질은 이렇다. NVIDIA는 자기 다음 세대를 자기 돈으로 키운다. 삼성·하이닉스는 자기 다음 세대를 키울 자리가 한국 안에 없다. 그래서 같은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가거나, 부동산으로 빠진다. 돈이 자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한 번 흡수되고 끝나는 자리.
한국은 이 사이클에서 부품 공급자다.
다음 종(種)을 키우는 자리는, 다음 사이클이 와도 한국 안에는 없다.
06 · 가설 5 — 자산의 위계 · 금, 은, 그리고 세공한 반지
Hypothesis 5 — 에이전트 경제가 들어오면 자산도 위계가 다시 그려진다. 비트는 금, 이더는 은, stablecoin은 그 금과 은으로 세공한 반지다.
| 자산 | 설명 |
|---|---|
| Bitcoin · SCARCITY / GOLD | 코인 그 자체. 사토시가 사실상 자리에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가장 견고하다. 코인 시대가 오면 가장 먼저 "디지털 금"으로 호명된다. |
| Ethereum · UTILITY / SILVER | stablecoin이 활성화되면 그 망 위에서 도는 가스가 곧 이더다. 다만 발행 주체가 일정 지분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비트만큼의 희소성은 없다. |
| Tether / Circle · RAILS / A FORGED RING | 금·은으로 세공한 반지. 사업체로서 결제망에서 가장 빨리 돈을 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 채권을 덜 사주는 시대, 단기채를 받아주는 새 수요처 역할까지 겸한다. |
위계는 절대값이 아니라 역할이다. 금이 반지보다 비싸 보여도, 결제망에서 더 자주 손을 거치는 건 반지다. 비트·이더가 자산이 되는 동안, stablecoin은 인프라가 된다. 빅테크가 한 분기에 동시에 결제망에 발을 들인 이유가 여기 있다.
07 · 종합 — 평행 종 · 한 문장으로 닫으면
가설 1·2·3·4·5를 한 문장으로 닫으면 이렇게 된다.
인간 경제는 인구가 자라는 만큼 자라왔다.
AI 경제는 에이전트가 자라는 만큼 자란다.
과거 경제 성장은 결국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였다. 인구 성장이 멈춘 자리에서, 같은 문법으로 다른 인구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람 = 밥 / AI = 전기. 사람 = 집 / AI = 데이터센터. 사람의 노동시간이 임금으로 정산되었다면, 에이전트의 노동량은 토큰으로 정산된다. 사람이 변리사를 통해 법에 닿았다면, 에이전트는 FDE를 통해 도메인에 닿는다.
이걸 시각화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왼쪽이 사람의 항목, 오른쪽이 AI의 항목이다. 놀라운 건, 짝을 맞춰 보면 무리한 비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08 · 후속 관찰 — 그 종에게 세금을 매긴다면
§07에서 두 경제가 같은 문법으로 자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도 같은 문법을 따른다 — 새 인구가 벌기 시작하면, 누가 거두고 어떻게 나누나. 초고를 쓴 5월에서 한 달 뒤, 그 질문의 답안 한 장이 도착했다. 이번엔 결제망이 아니라 정책 쪽에서.
Anthropic이 Fable 5의 토큰 단가를 두 배로 올리고 정액제 바깥으로 빼낸 그 달에, 같은 회사가 14쪽짜리 경제 정책 문서(EPF)를 함께 내놓았다 — 실업률이 약 5%, 약 10%, 그리고 역사상 최고치를 넘으면 정부가 단계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은 문서다. 진단은 §02에서 적은 노동 대체와 정확히 겹친다. 파이는 커지는데, 그 이익이 노동이 아니라 AI를 가진 자본으로 쏠린다. 문서는 그 벌어지는 틈을 'THE DIVERGENCE'라 불렀다.
처방은 단계별로 올라간다 — 전 국민 AI 지분 통장(국민이 주주로서 AI 수익을 같이 받는 계좌)에서 시작해, 실업급여 자동 트리거를 지나, 최후엔 목표가 '일자리 복귀'에서 '소득 자체의 대체'(기본소득·AI 국부펀드)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노동소득이 마르면 노동에 매기던 세금도 마른다. 그래서 새 세원으로 AI 사용량을 제안한다. 측정 단위는 토큰·컴퓨트·매출, 후보 단가는 100만 토큰당 $10~$50.
여기서 이 글의 §07이 다시 울린다. 나는 거기서 "에이전트의 노동량은 토큰으로 정산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그 종에게 매겨질 첫 세금도 토큰으로 계산된다. 사람이 시간으로 벌어 시간(노동)에 과세됐듯, 새 종은 토큰으로 벌고 토큰으로 과세된다.

가장 묘한 건 누가 이 제안을 했는가다. 토큰에 세금을 매기자고 적은 회사가, 바로 그 토큰을 파는 회사다. 문서 14쪽에서 유일하게 문단 전체가 굵게 강조된 한 문장이 그 자기참조를 정면으로 받는다.
"세금을 어디에 매기든, 어떤 방식으로 분배하든,
우리는 공정한 몫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진심인지, 선수를 치는 건지, 둘 다인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 새로운 종이 태어난 자리에서 첫 계산서의 초안이 이미 적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초안을 쓴 손이 그 종을 파는 손과 같다는 것이다.
09 · 한 발 더 — 수요는 누가 떠받치나
§08의 계산서를 들여다보다 한 발 더 들어갔다. AI는 이미 수요가 있는 자리를 채우려고 사람의 일을 가져간다. 그럼 그 사람이 벌었어야 할 돈은 어디로 가나. AI 에이전트가 가져가나 — 아니다. 기업이 가져간다. 운영이 완전히 자율화되기 전까지, 사람 수는 줄고, 그 회사를 가진 쪽이 점점 더 많이 갖는다.
그런데 '가진 쪽'을 끝까지 따라가면 흐릿해진다. 사장·회장 위에 이사회, 그 위에 주식시장, 그 위에 주주들. 주인은 한 명으로 모이지 않고 위로 흩어진다.
오늘 읽은 책 《품격 있는 대화를 위한 지식 브리핑》에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었다. 석유가 나는 나라의 사람들은 왜 가난한가 — 노르웨이는 괜찮은데. 같은 자원을, 노르웨이는 국부펀드로 돌려 사회로 되먹였고, 건강하지 못한 체계의 나라들은 독재자의 독식이 분배를 끊어 사람들이 가난해졌다. AI라는 새 유전(油田)도 같은 저주의 갈림길에 선다. §08의 지분 통장과 국부펀드가, 바로 그 노르웨이 쪽 길이다.
그런데 끝까지 가면, 결국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 수요를 떠받치는 건 사람이다. AI가 아무리 공급해도, 그 꼭대기에서 그걸 필요로 하는 건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돈을 못 벌면 수요가 마르고 —
공급만 무한히 늘고 수요가 마르는 경제는,
자기를 먹는다.
그래서 어쩌면 분배는 도덕이 아니라 자기보존이다. 그러면 §08의 '공정한 몫'도 다시 읽힌다 — 선의가 아니라, 공급이 제 고객을 살려두려는 계산. 언젠가 다른 글에 '수요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고 적었는데, 이젠 그 수요 자체를 어떻게 남겨두느냐가 문제가 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빵 굽는 기계가 하나 있다.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빵을 굽는다 — 빵이 모자랄 일은 없다. 그런데 그 기계가 마을 사람들 일까지 다 가져갔다. 일이 없으니 주머니엔 동전이 없다. 빵은 산처럼 쌓이는데 살 사람이 없다. 아무리 잘 굽는 기계도, 동전 쥔 손이 사라지면 거기서 멈춘다.
새 종이 바로 그 기계다. 빵은 얼마든지 만든다. 정말 어려운 건 그 빵을 살 사람을 남겨두는 일이다.

그런데 우화를 적어 두고 현실을 보니, 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글에서 봤다 — 사모펀드가 AI를 들고 어디로 몰려가는지. 콜센터, 회계, 부동산 관리, 그리고 농사 같은 일. 분절돼 있고, 사람 손이 많이 드는 자리들. 거기서 비용을 깎으면 마진이 두세 배가 되고, 시장이 그 회사를 다시 비싸게 쳐주고, 그 돈으로 또 사들인다. 빵 기계는 수요를 말린다고 했는데 — 돈은 수요가 살아 있는 자리로 제 발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리들은 수요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 사람 손으론 다 못 대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길러낸 걸 사려면, 사람 손에 돈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게 좀 묘하다. 우리는 밥 한 공기로 하루를 일하고, 그 일로 번 돈으로 다시 빵을 사 먹는다. 일해서 버는 사람과 그 돈으로 사 먹는 사람이 같다 — 일하는 입과 사 먹는 입이 하나인 것이다. 새 종은 거꾸로다. 같은 일을 하는 데 데이터센터를 통째로 돌리면서, 정작 그렇게 구운 빵은 한 입도 안 먹는다. 우리는 지금, 적게 먹고 그 돈으로 도로 사 먹던 일꾼을, 많이 먹으면서 아무것도 안 사는 일꾼으로 바꿔 끼우는 셈이다. 게다가 새 종이 일을 엄청나게 해낸다고들 하지만, 그게 더 효율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24시간, 쉬지 않고, 빠르게 할 뿐이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자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자원을 태워서 밀어붙인다.
그래서 짐이 하나 더 늘었다. 사람들이 살 수 있게 수요를 남겨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태울 자원도 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지구가 가진 자원은 정해져 있고, 다 써버리면 거기서 끝이니까. 빠져나갈 길은 둘쯤으로 보인다. 이 끝없는 챗바퀴를 멈추거나, 아니면 새 종이 진짜로 효율적이 되거나. 지금은 AI 하나가 사람 하나보다 더 많은 자원을 먹는다. 그게 뒤집혀야 한다 — AI 하나가 쓰는 자원으로 사람 여럿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더 많이 먹고 더 빨리 도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느 쪽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게 계속 굴러갈 수 있을까. 새 종이 사람한테 필요한 걸 다 만들어준다 치자. 그래도 그 물건을 가져다 쓸 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 수요가 끝까지 남을까, 지금만큼은 될까. 게다가 무언가를 만들고 쓰는 일은 결국 지구의 자원을 깎아 먹는 일이다. 석유처럼, 한 번 태우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끝없이 쏟아내는 공급을, 정해진 자원이 어디까지 받쳐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을 끝까지 밀면, 결국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 물건을 사 줄 사람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다 사람이니까. 새 종이 일을 다 가져가고 나면 — 사람은 이제 뭘 하며 살까. 여기서 길이 둘로 갈린다. 일하지 않게 된 쪽과, 그래도 남아 일하는 쪽.
먼저 일하지 않게 된 쪽.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들의 태반은, 실은 일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출퇴근, 일에 쓰는 장비, 그걸 또 받치는 무수한 것들 — 서로 맞물려 돈다. 그런데 사람이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엔, 그 맞물림이 통째로 풀린다. AI끼리는 저들끼리 사고팔겠지만, 그건 우리 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다 걷어내고 맨 밑바닥에 남는 건 하나다.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 그게 뭘까. 그리고 그 끝이 — 그저 통 속에 담겨 좋은 기분만 주입받는 뇌라면. 그게 수요의 마지막 모습이라면, 나는 그게 좀 무섭다.
그래도 남아 일하는 쪽은, 결국 그 내용을 이해하는 소수일 것이다. 분야마다 AI에게 방향을 주고, 그 결과를 알아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게 사람한테 남는 진짜 일이고, 진짜 수요다. 그런데 여기에도 가시가 있다. 이해는 해봐야 생긴다. 지금의 전문가들도 바닥부터 굴러서 — 틀려보고 삽질하면서 — 그 이해를 쌓았다. AI가 그 바닥 일을 다 가져가면, 올라가는 사다리가 사라진다. 지금 사람들은 한동안 그 힘으로 굴러가겠지만, 다음 전문가를 빚어내던 자리가 조용히 닫힌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해에 닿는 길이 없어서 멈출 수 있다.
그래서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제 질문이 둘로 또렷하다. 일하지 않게 된 사람은 무엇을 원하게 될까 — 그리고 남아서 이해하는 소수는, 그 이해를 어디서 얻을까. 둘 다, 아직 내겐 답이 없다.
10 · 닫는 말 — 공상소설 같다, 그래서 언젠가 쓴다
여기까지가 분석이다. 사실 카톡에서 이 말을 적은 선배가 직접 한 줄을 더 붙였다. "공상소설 같다" — 가설이 정합적일수록 어쩐지 SF 단편의 도입부 같아진다는 자각.
그래서 분석의 끝에 한 장면을 덧붙여 둔다. 나중에 진짜 단편을 쓰게 되면 1쪽에 둘 장면.
2026년 5월의 어느 저녁, 우리는 카카오톡 창에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었다.
빅테크가 한 주 안에 같은 결정을 내렸고, 누군가는 그게 결제 표준이라고 말했지만, 우리에게 그건 어떤 인구의 등기부등본처럼 보였다. 사람의 통계와 평행하게, 다른 한 줄이 처음 적히는 순간 — "거래 주체: 비인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일하다 너덜너덜해진 패잔병이었지만, 어쩌면 다음 종이 막 입주를 시작한 옆집의 첫 세입자이기도 했다.
분석은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 거품이 아니다. SF는 가설이 틀린 채로도 한 권의 책이 된다. 그래서 둘 다 적어둔다 — 시장이 어떻게 되든, 이 한 달의 풍경 자체는 다시 안 온다.
닫으며
새로운 종이 태어난 자리에서, 우리는 옆집의 첫 세입자다.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