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이 길어졌다
그 하루
오늘은 워크샵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엔 영화관에서 월드컵을 봤다. 한국 대 멕시코. 점심은 호텔 뷔페. 그리고 자유시간.
여기까지는 누군가 짜둔 일정이었다. 시간표가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자유시간이라는 칸이 열리자 — 나는 집으로 바로 가지지 않았다.
목적 없이 돌아다녔네
잠실을 돌았다. 백화점, 마트, 토이저러스, 키즈카페, 푸드코트. 살 것도 갈 데도 없으면서, 돌고 또 돌았다.
어디든 텅 비어 있었다. 키즈카페엔 아이 하나가 아무도 없이 혼자 놀고 있었는데, 그게 한참 안쓰러웠다. 롤러장도 텅. 토이저러스도 아이들 없이 텅텅 비어서, 삭막했다.
텅 빈 놀이터들 사이를,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어른 하나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게 나였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냥 목적 없이 돌아다녔네 ㅎㅎ 벌써 집 도착했을 텐데 이제 판교역임.
내 손으로 적어놓고 보니, 그게 그날의 정확한 진단이었다. 목적 없이 돌아다녔네. 길은 늘 다니던 길이었다. 달라진 건 길이 아니라, 머릿속에 도착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키맨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뭘 해야 할지 뚜렷하지 않으면 — 삶도, 회사 일도 똑같이 방황한다. 퇴근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책상 앞에서도 길을 잃고 있었다. (일과 삶을 따로 떼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나는 늘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할 일은 다 같이 합의해서 모아뒀다. 그런데 정작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안 해본 영역은 다른 쪽에 넘겼고 — 뭣이 중헌지조차 모르겠어서, 그 우선순위를 대신 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뭣이 중헌지를 모르니, 뭣이 중헌지 정해 달라고 한 셈이다.
회사 일로, 아는 형에게 한참 변명을 늘어놓았다. 길을 뚫어줄 키맨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형이 짚었다.
키맨이 없진 않은데, 아마 방향과 결과물이 뭔지 안 잡히는 게 큰 거겠지.
그 말이, 내가 늘어놓은 어떤 말보다 정확했다. 없는 사람을 탓하고 있었는데 — 비어 있던 건 사람이 아니라 방향과 결과물이었다. 그 둘을 정의하는 게, 요즘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리더의 일이란 게 모호함과 싸우는 일이라더니, 그 모호함의 한복판이 거기였다.
그날 하나 더 알았다. 결정하는 자리엔 "모르겠어요"를 들고 가는 게 아니라는 것. "이걸 하겠습니다", 아니면 "A와 B 중에 골라주십시오"를 들고 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나는 생각이 정돈되지 않은 채 물음표만 던지고 있었다. 정제해서 가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 모르는 걸 어떻게 정제하지? (전에 이 자리에 이름을 붙여둔 적이 있다. 모른다는 걸 모르는 층. 거기선 결정도, 질문도 만들 수 없다.)
방황에도 두 종류가 있다
생각해보면, 길을 잃는 데도 두 종류가 있더라고.
하나는 목적과 방향이 없을 때. 지도도 있고 걸을 힘도 있는데, 갈 곳이 없다. 그러면 늘 다니던 길도 배회가 된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어디로 움직일지를 몰라서 헤매는 것.
또 하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때. 이건 더 깊다. 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발밑의 지형이 안 보인다. 무엇이 빠졌는지를 모르니 질문조차 못 세운다. 방향을 못 잡는 게 아니라, 방향을 물을 수가 없는 것.
오늘 나는 둘 다였다. 목적도 흐릿했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길에서도, 책상에서도 똑같이 헤맸다.
백지가 사라졌다
더 정확한 이유가 하나 있다.
전에 나는 빈 종이에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회사 밖에서도, 예전에 있던 R&D 자리에서도 — 백지가 주어졌다.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것저것 지어보는 게 일이었다.
지금의 업무 환경은 다르다. 백지가 없다. 이미 있는 것 안에서, 그 안에서 생각을 넓혀야 한다. 무에서 짓는 게 아니라, 주어진 틀을 딛고 그 위로 확장하는 일.
이 전제가 바뀐 걸 나는 몸으로 못 따라가고 있었다. 빈 캔버스를 찾는 손버릇이 남아서, 자꾸 없는 백지를 더듬고 있더라고. 어쩌면 그래서 — 집에 가는 길에서도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 도착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어디든 기웃거리는, 빈 종이에서 시작하던 사람의 버릇.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AI로 게임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 게임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 안에서 넓히라는데 — 정작 나는 그 '안'을 잘 몰랐다. 우리가 쓰는 도구도, 그 위에서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도.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러니 공부하기로 한다. 빼먹은 앞단을, 그리고 딛고 설 바닥을.
빼먹은 건 '왜'였다
백지가 없는 자리에서는, "내가 뭘 그리고 싶은가"로 시작할 수 없다. "여기 무엇이 있고, 무엇이 필요한가"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그거였다.
왜.
무엇이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 — 수요를 들여다보는 일. 나는 만드는 법은 익혔는데, 무엇을 왜 만드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백지가 늘 있었으니까. 주어지면 만들었고, 잘 만드는 데 골몰했다. 그 앞단의 질문은 통째로 건너뛰었다.
수요를 읽으려 고개를 돌렸더니, 막상 들여다볼 원천부터 빈곤했고, 내가 가진 그림도 너무 흐릿했다. 기댈 레퍼런스도 마땅찮았다. 한참 끙끙대다 겨우 내놓은 생각조차, 알고 보니 전에 이미 한 이야기였다. 새로 발견한 게 아니라 — 흐릿하게 떠다니던 걸 내가 아직 또렷이 붙잡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말하는 게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는 걸. 없는 키맨을 기다릴 게 아니라 — 내가 그 키맨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일단, 돌아가게
아직 방향도 결과물도 또렷하지 않다. 그래도 일단 뭐든 돌아가게 해보는 중이다. 형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망하면 리더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쫓겨나겠지 뭐 ㅋㅋ
좋은 마인드라고 했다. 나도 안다, 농담 반인 거. 그런데 농담 반의 진담이기도 하다. 완성된 지도를 손에 쥐고 출발하는 게 아니라 — 한 발 떼고, 틀리면 거기서 또 고치고. 뭔지 모르겠는데, 돌아는 간다. 사실 시작할 때부터 그런 느낌이었다.
종일 헤매고 하나는 건졌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때, 비어 있던 건 길도 사람도 아니었다. 비어 있던 건 내가 어디로 가는지였다. 그리고 그건 누가 뚫어주거나 채워주는 게 아니라, 내가 또렷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길을 잃은 건 나무람이 아니라 신호였다고 해둔다. 내일은 — 키맨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말하는 걸 더 또렷하게 만드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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