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Poet / Essay
어디서 시작할까3 / 3

꺼내지 않으면, 배운 게 아니다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어넣는 게 아니라 꺼내는 것 — 내 것을 output으로 만들어 봐야 비로소 배운 게 된다. 꺼내기 전엔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가장 멀리 가는 건 좋아하는 걸 꺼낼 때. 좋아함도 결국 하나의 수요 — 내가 그것의 가장 정직한 수요자다. 바깥의 수요에서 시작하는 글의 짝이 되는, 안의 좋아함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2026-06-19 · 5회 읽음
배움아웃풋좋아함공부수요

꺼내야 배움이다

▶️ 파인만의 5가지 습관 — '다시 읽기는 멍청하다'을 보다가, 오래 흐릿하던 게 하나 또렷해졌다.

파인만의 렌즈 — 절대 잊지 않는 뇌를 만드는 법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어넣는 게 아니라 꺼내는 거더라고.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모으는 것 — 그게 공부인 줄 오래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것을 꺼내서 무언가로 만들어 봐야, 그제야 배운 게 된다.

영상은 그걸 이렇게 말한다. 눈으로 읽기만 한 지식은 젖은 모래 위 발자국처럼 휘발되고, 설명하려고 꺼내는 순간 단단한 바위에 새겨진다고. 가르치려고 공부한 학생이 시험 보려고 공부한 학생보다 28% 더 잘하더라는 연구도 함께.

왼쪽 젖은 모래 위 발자국, 오른쪽 불꽃을 튀기며 바위에 새겨지는 조각 — 수동적 읽기 vs 능동적 설명
젖은 모래 위 발자국 vs 바위에 새기기 —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출처: 유튜브 '파인만의 렌즈'

들어가기만 한 건 쌓인 게 아니다. 그냥 지나간 거다.

꺼내기 전엔,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이걸 글로 겪었다. 머릿속에서는 분명 알 것 같던 생각이, 막상 적으려고 하면 손에 안 잡힌다. 빈 데가 그제야 보인다. 아, 나는 이걸 모르고 있었구나.

꺼내는 일은 배움을 고정하고 검증한다. 출력해 보기 전까지, 내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며칠 전에도 같은 자리에 섰다 — 모르는 걸 모르던 자리. 꺼내 보는 게 그 안개를 걷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장 좋은 건, 좋아하는 것

그런데 꺼내는 건 힘이 든다. 계속하려면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 동력으로 가장 센 건 — 좋아함이다.

같은 영상에 파인만 이야기가 나온다. 번아웃이 왔던 시절, 카페테리아에서 누가 던진 접시가 흔들리는 걸 보고 그 움직임을 방정식으로 풀어봤다고. 숙제가 아니라, 그저 재미로. 그 사소한 재미가 훗날 노벨상 연구로 이어졌다.

황금빛으로 빛나며 흔들리는 직사각형 접시와 칠판 앞 파인만 — 카페테리아 흔들리는 접시 일화
흔들리는 접시 — 「접시가 날아갈 때」. 재미로 풀던 장난이 노벨상으로. 출처: 유튜브 '파인만의 렌즈'

좋아하는 걸 꺼낼 때 가장 멀리 간다. 의무로 꺼내는 건 한두 번에 멈추지만, 좋아서 꺼내는 건 알아서 굴러간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써 둔 적이 있는데 — 그 무용함이 사실은 가장 오래 가는 연료였다.

좋아함도, 하나의 수요다

여기서 두 갈래가 만난다.

얼마 전엔 수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썼다 — 바깥의 수요. 그런데 안에도 수요가 있다. 내가 좋아서 필요로 하는 것. 내가 바로 그것의 가장 정직한 수요자다. 결국 고객은 나였다는 말이, 여기서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둘은 반대가 아니다. 남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거나, 내가 좋아서 필요로 하는 걸 만들거나 — 어느 쪽이든 수요에서 시작한다는 건 같다. 다만 한쪽 수요는 밖에 있고, 한쪽은 내 안에 있을 뿐.

그러니, 꺼낸다

배우고 싶으면 꺼낸다. 읽은 걸 쌓아만 두지 말고, 내 것으로 한 번 만들어 본다.

그리고 이왕이면 — 좋아하는 걸 꺼낸다. 그게 가장 멀리 가는 배움이고, 가장 오래 가는 동력이니까.

이 글도, 그렇게 꺼낸 하나다.

이 글에 남긴 포스트잇0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

이어 읽을 글
집에 가는 길이 길어졌다목적이 사라지면 익숙한 길도 방황이 된다. 워크샵이 끝난 자유시간,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잠실의 텅 빈 키즈카페와 롤러장을 돌던 하루. 아는 형은 내 변명을 바로잡았다 — 키맨이 없는 게 아니라 방향과 결과물이 안 잡히는 거라고. 길을 잃었다 싶을 때 비어 있는 건 길도 사람도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였고, 그건 누가 채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또렷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지에서 시작하던 사람이, 주어진 틀 안에서 길을 잃는 이야기.머릿속에서 MSA는 그려지는데 고양이는 안 그려진다MSA라는 말엔 설계도가 펼쳐지는데, 고양이라는 말엔 색도 질감도 없는 흐릿한 형체 하나만 뜬다는 걸 알아챈 날의 기록. 딸은 오만가지 고양이를 재잘거리는데, 나는 언제부턴가 세상을 요약만 하고 있었다 — 좋아한다는 게임조차 뜯어본 적 없이 심볼로 봤다. 설계도가 선명하고 고양이가 흐릿한 건 재능의 배치가 아니라 시간의 배치였다. 개발을 배우던 방식을 그대로 옮긴다 — 많이 보고, 역기획서로 뜯어보고, 직접 그린다. 끝그림은 나만의 그림체로 내 것을 만드는 것. 시리즈 '프로그래머가 그림을 배우는 방법' 1편.감정은 신호였다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을 기한 안에 해내야 하는 요즘, 가장 고약한 건 모르는 걸 모르는 상태였다. 사람에게는 AI에 없는 센서가 있다 — 감정이다. 화남·슬픔·억울함·감동은 내가 모르던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는 신호이고, 모델이 loss로 배우듯 사람은 감정으로 모름을 감지한다. 감정을 신호로 읽기 시작하자 마음의 힘듦과 해야 할 일·해야 할 말이 갈라졌다 — 재촉하는 사람의 불안도 같은 신호였다. 그리고 사람도 환각한다 — 모른다는 걸 모른 채 아는 해법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는다. 부딪혀야 신호가 온다.
dev · 2026.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