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없는 곳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막막함에 이름이 붙었다
며칠 전, 나는 길을 잃었다고 썼다.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빼먹은 건 '왜'였다고.
오늘 기획을 붙들고 있다가, 그 막막함에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 나는 수요가 없는 곳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만드는 건 늘 자신 있었다. 문제는 그 앞이었다. 어디서 시작하는가. 나는 늘 만들 것에서 시작했는데 — 시작해야 할 자리는 수요였다.
시장을 보던 눈
이 깨달음은 두 가지가 엮이면서 왔다. 이번에 회사에서 이 일을 겪은 것, 그리고 최근에 경제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
요즘 나는 시장 지도를 그려 두고 구리 수요를 들여다보고, 반도체 수요를 들여다본다. 그냥 궁금해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 그게 어느새 수요를 보는 눈을 기르고 있더라고.
전체 수요의 풀을 펼쳐 놓고, 그게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다 보면 — 시장이 보인다. 지금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과한지 아닌지,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다. 종목을 두고 단정하려는 게 아니라, 수요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연습하는 중이다.)
있다, 그리고 동작한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큰다. 칩이 더 필요해진다. 수요가 느니 값이 오르는 건 맞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그 수요가 실제로는 동작하지 않고 있다는 게 보였다. 칩이 데이터센터에 들어가야 하는데 — 데이터센터를 못 켜고 있다. 전력이 부족해서. 전기가 이미 있는 자리에는, 새 데이터센터를 못 지어서.
그래서 하나 알았다. '수요가 있다'와 '수요가 동작한다'는 다른 말이더라. 있다고 다 흐르는 게 아니다. 떠 있기만 한 수요가 있다.
회사에서는, 그 목소리가 없었다
여기서 멈칫했다. 회사에서 내가 부딪힌 게 정확히 그거였으니까.
나는 내 제품을 쓰는 사용자의 수요와 니즈를 분석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없었다. 들을 데가 없으니 방향이 안 잡혔다. 우선순위도 이게 맞나 싶었다. 결국 몇몇 만난 사람의 목소리에 치우친 판단이 됐고 — 그러다 보니 수요를 읽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정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망망대해였다. 나침반이 가리킬 자북이 없는.
목소리가 없으면, 내가 된다
원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고객이다. 고객의 니즈. 고객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는 뜻은 아니다. 재해석하는 거다. 아, 진짜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내가 만들어줄게. — 그게 내 마인드였다. 그런데 그 재해석을 하려면, 일단 들려야 한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재해석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해졌다. 고객의 목소리가 없으면, 내가 그 제품의 가장 깊은 사용자가 되는 것.
전에도 한 번 이 자리에 선 적이 있다 — 결국 고객은 나였다고. 이번엔 회피가 아니라 방법으로 그 자리에 선다. 내가 직접 쓴다. 쓰면서 문제를 잡는다. 고친다. 완벽한 수요 지도는 아직 없지만, 한 명의 진짜 사용자는 지금 당장 있다. 나.
만드는 눈, 보는 눈
돌아보면 나는 늘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잘 만드는 법은 익혔는데, 무엇을 왜 만들지 보는 눈은 기른 적이 없었다.
그 눈이 지금, 두 자리에서 한꺼번에 자라고 있다. 회사에서 막막하게 부딪히면서, 그리고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따로 노는 줄 알았던 둘이, 사실 같은 언어였다 — 수요를 읽는 한 가지 눈.
그러니 이제 두 눈을 같이 쓰기로 한다. 만드는 눈과, 수요를 보는 눈. 시작은 언제나 수요가 있는 — 그리고 동작하는 —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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