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 전직했더니 동료가 여섯 조직이고 세계는 패치 중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신을 차려보니 리더였다.
이세계물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다른 세계에 떨어지듯이 — 다만 내 경우엔 책상도 키보드도 그대로였다. 같은 사무실, 같은 사람들. 단지 직무 설명이 한 칸 바뀌어 있었다. 그 한 칸이 모든 것을 바꿨다.
전날까지의 나는 코드를 짜면 일이 끝나는 사람이었다. 오늘부터의 나는 결정을 내리면 일이 시작되는 사람이었다.
캐릭터 시트가 비어있다
이세계로 떨어진 주인공은 가장 먼저 자기 캐릭터 시트를 들여다본다. 능력치, 클래스, 직업. 그게 자기 무기다.
내 캐릭터 시트는 비어있었다. 정확히는, 적힌 게 있긴 했는데 그게 오늘부터도 유효한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어제까지의 능력치가 오늘 무용해질 수 있다는 게 이 세계의 룰처럼 보였다.
가장 무서운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 — 그게 가장 무서웠다.

세 층이 있다고 한다. 안다는 걸 아는 것, 모른다는 걸 아는 것, 모른다는 걸 모르는 것. 가장 위는 좁고 가장 아래가 넓다. 나는 가장 아래에 있었고,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그때는 몰랐다.
질문을 던지려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모르는 걸 모르면 질문조차 만들 수 없다. 결정도 못 하고, 묻지도 못하는 자리. 답답한데 정작 무엇이 답답한지도 모르는, 그 막막한 자리에서 매일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세 격변이 동시에 도착했다
이세계에 떨어진 사실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그 위에 두 개가 더 얹혀 있었다.
- 첫 격변 — 나는 리더가 처음이었다.
- 둘째 격변 — 같이 일해야 할 동료가 여섯 조직이었다. 한 조직 안의 팀원이 아니라, 다른 OKR을 가진 여섯 개의 조직. 각자의 우선순위, 각자의 일정, 각자의 룰.
- 셋째 격변 — 세계가 패치 중이었다. AI 대격변. 어제까지의 일하는 방식과 오늘의 베타 빌드가 충돌하고 있었다.
한 격변만 와도 적응에 한 분기가 걸렸을 텐데, 세 개가 동시에 도착했다. 룰북은 인쇄 중이었고, 모두가 룰북을 읽지 않은 채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이름이 있다
이 자리에 가장 정확하게 이름을 붙여주는 캐릭터가 있다. 원펀맨의 킹. 지구 최강의 남자로 불리는, 사실은 평범한 게이머 일반인. 명성은 전부 옆에서 일어난 사건의 우연한 부산물.
킹은 두려울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런데 그 박동 소리가 적에게는 압도적인 힘을 억누르고 있는 자의 위협으로 들린다. 공포가 외부에서는 권위로 변환된다.
신임 리더의 자리가 정확히 그 자리였다. 안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나" 떨고 있는데, 옆 조직 사람의 눈에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한 번 결정을 내릴 때마다 — 사실은 잘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는 그 자리가 더 두꺼워진다.
내가 그 킹이었다. 그렇게 느꼈다.
당시엔 몰랐다. 회의실의 모두가 그 자리에선 킹이었다는 걸.
매일 떠오르던 다섯 줄
매일 머리를 떠나지 않던 다섯 가지 질문이 있었다. 출근길에 떠올라 점심에 한 번 더 떠오르고 퇴근하기 직전에 다시 떠오르던 다섯 줄.
그 다섯 줄이 다음 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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