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머리를 떠나지 않던 다섯 가지 질문
매일 떠오르던 다섯 줄
다섯 줄은 이랬다.
이렇게 해도 되나, 저렇게 해도 되나. 다른 조직에 이런 걸 부탁해도 되나. 어디까지가 내 범위이지? 내 역할이 정확히 뭐지? 그리고 이 목표 — 내가 매일 쫓고 있는 이 목표가 정말 회사가 원하는 건가, 디렉터가 원하는 건가, 내가 그렇게 믿어버린 건가?
출근길에 떠올라 점심에 한 번 더 떠오르고 퇴근하기 직전에 다시 떠오르던 그 다섯 줄. 어느 줄도 답이 없었다. 답이 없는 채로 매일 결정을 내려야 했다.
모르는 걸 모르는 상태
이 다섯 줄이 무서웠던 진짜 이유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답을 어떻게 찾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잘 던지려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선 모르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옆 조직에 부탁해도 되는지 — 그 부탁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부탁할 수 없었다. 내 범위 — 그 범위를 누가 그어주는지 몰랐다. 목표 — 누구의 목표인지 모른 채로 매일 그걸 쫓고 있었다.
문제 자체가 있다는 건 안다. 문제가 어떻게 생긴 건지를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풀지도 그릴 수 없다.
빈자리는 채워진다
빈자리는 그냥 비어 있지 않는다. 어떻게든 채워진다. 무엇으로? — 회의에서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의 말로.
합리보다 목소리가 앞서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자신 있게 "이건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하면 그게 결정처럼 굳어 갔다. 그게 정말 우리 일이었는지, 정말 그쪽 일이 아니었는지 — 교차로 확인되지 않은 채 굳어 갔다. 그러는 사이 다음 날 출근길에 또 다른 다섯 줄이 다시 떠올랐다.
목소리 큰 사람이 결정의 주체였다. 회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도 목소리를 키워야 하나를 한 번 더 생각했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면 무엇인지 — 그것도 그때는 몰랐다.
다섯 줄이 들리지 않는 자리
내가 그 다섯 줄을 매일 가지고 다닌다는 걸 옆자리 사람은 알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릴 때 내 안에서 들리던 심장 박동 — 1편의 킹 엔진 — 은 옆자리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더 갇혔다. 다섯 줄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더 물어보지 못하고, 더 모른 채로 결정하고, 그러면 다섯 줄이 다음 날 더 길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옆 회의실에서도 똑같은 다섯 줄이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옆 조직의 리더도 자기 자리에서 이렇게 해도 되나를 묻고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자기 다섯 줄을 안 보이게 들고 다녔다.
다음 편 호출
이 다섯 줄이 한 번에 풀린 자리가 있었다. 회의라기보다는 모두가 자기 다섯 줄을 처음으로 꺼낸 자리 — 어색하고 천천히, 한 명씩.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다음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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