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Poet / Essay

오늘 우울하니

주말 이틀이 선물 같았다. 토요일은 어린이집 친구네와, 일요일은 대학 후배의 결혼식과 서울랜드에서 — 아내를 소개해 준 형님과 아이들, 우연히 만난 단짝까지. 돌아오는 길 환한 보름달에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었다. 아직 답을 못 찾은 어려운 시기지만, 받기만 하던 내가 집에 와 처음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 우울하니. 받은 이틀이 나를 열어, 비로소 곁의 감정을 더듬게 했다.
2026-06-28 · 4회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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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토요일은 윤슬의 어린이집 친구네와 함께 보냈다. 같은 반에 윤슬을 무척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가 윤슬에게 편지를 써 왔다. 윤슬 인생 첫 러브레터였다. 거기엔 결혼하자고 적혀 있었다. 분홍 장미 세 송이와 손편지, 그리고 장난감 활을 손에 들고서. 어린이집 꼬마의 고백치고는 격식이 제법이었다. 씨익 웃음이 났다.

그러다 웃음 끝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그게 전부인 고백. 재지도 숨기지도 빙 돌지도 않는 마음. 돌아보면 내 어린 날은 늘 그 반대였다. 좋아할수록 비겁해지고, 들킬까 봐 자꾸 에둘러 가던, 한참 찌질한 시절. 그 어린아이의 직진 앞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무언가를 봤다. 차라리 이렇게 살았더라면.

장미 세 송이와 활 한 자루. 어디 쓸 데도 없는 것들인데, 그래서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선물이었다.

아이 부모도 빈손이 아니었다. 맛있는 망고를 들고 왔고, 양주도 한 병 꺼내 놓았다. 나도 집에 두었던 술을 몇 병 보탰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즐거웠는데, 가만 듣다 보면 이야기가 자꾸 한곳으로 모였다. 아이 걱정. 그리고 그 너머의 걱정.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앞으로의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웃다가 문득 진지해지고, 진지해지다 다시 웃었다.

누구의 입에서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든든했다. 혼자 안고 있을 땐 무겁던 게, 같은 자리에서 꺼내 나누니 한결 견딜 만해졌다.

일요일

일요일엔 대학 동아리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윤슬도 데리고.

오랜만의 예식장은 반가운 얼굴들로 가득했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형님들이 거기 있었다. 그중엔 내게 아내를 소개해 준 형님도. 그 형님의 딸과, 내 딸 윤슬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가만 보면 묘한 자리였다. 내 삶에서 가장 큰 것을 건네준 사람이 제 딸을 데리고 거기 서 있고, 나도 내 딸을 데리고 그 앞에 서 있었다. 받은 사람이, 받은 것을 곁에 세워 두고 다시 만난 셈이다.

서울랜드

식이 끝나고 넷이서 서울랜드에 갔다. 형님과 그 딸, 윤슬이, 그리고 나. 아이 둘이 앞서 걷고, 어른 둘이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러다 거기서 아인이를 만났다. 윤슬이가 어린이집에서 정말 친하게 지내던 아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넓은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우연이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싶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좋아 어쩔 줄 몰랐고, 나는 그 우연이 괜히 고마웠다.

이틀이 그랬다.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 자꾸 곁에 나타나는 이틀. 선물 같았다. 받는 줄도 모르고 받는, 그런 이틀. (받은 것이 쌓여 사람을 채운다고 써 둔 적이 있다.)

오늘 함께한 이들에게도 이 하루가 선물이었으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보름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름달이 환했다.

나는 거기에 소원을 하나 빌었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저 모두 건강하자고. 모두 행복하자고.

사실은 나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이 참 어렵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멈춘 건 아니라고, 여전히 더듬어 보는 중이라고 — 달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나에게 말해 두었다. 계속 해보고 있노라고.

오늘 우울하니

집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는데, 아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오늘 우울하니.

아내가 많이 놀랐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그런 걸 물어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정말 그랬으니까. 나는 늘 받는 쪽이었다. 내 기분이 어떤지 먼저 살펴 준 건 언제나 아내였고, 나는 그 보살핌 위에서 겨우 나로 서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받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곁을 돌아본 것이다.

돌아보니 순서가 그랬다. 내가 넉넉해서 아내를 살핀 게 아니었다. 이틀 내내 받은 것이 나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옆 사람의 마음이 보인 것이었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의 결을 따라 곁의 감정까지 더듬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오늘 내게 온 가장 큰 선물은 그거였다.

아직 답은 못 찾았다. 그래도 오늘은, 묻는 법을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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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풍요아내가 일주일 입원한 사이, 혼자 아이를 등하원시키고 집안일과 회사일을 도맡았다. 그 한 주의 끝에 누군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 불렀다. 그 말이 고마웠던 건, 그 좋음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받아서 쌓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승제의 다섯 태도, 상담사가 되어준 아내, 그리고 윤슬에게 물려주고 싶은 한 가지.신념은 대물림된다인사이드 아웃 2에서 신념이 형태를 갖춰 자라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들여다보니 감사였다. 신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지어지고 대물림되는 것. 부모가 깔아준 바탕 위에 내가 짓고, 이제 딸이 제 신념을 짓기 시작한다. 부모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한 가닥에 대한 글.감정이 나의 것마흔에 인사이드아웃2를 보다 울었다. 순수한 기쁨은 이제 온전히 못 느끼지만, 윤슬이가 그걸 느낄 때 잃어버린 조각을 줍는 것 같았다. 좋은 감정만 골라 내가 될 수는 없다 — 뒤엉킨 그 감정들이 전부 내 것이고, 그 시간을 오롯이 느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감사한다.
dev · 2026.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