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요
일주일
아내가 입원했다. 일주일 가까이 혼자였다. 윤슬을 깨워 등원시키고, 하원시켜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 집안일과 끼니. 그 사이사이로 끊이지 않는 회사 일. 하루가 빈틈없이 맞물려 있어서, 한 가지만 어긋나도 그날 전체가 어그러졌다.
이번 한 주, 내겐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윤슬이 하원하는 시간에 맞춰 돌아와 저녁을 차리고, 늘 같이 보내던 놀이 시간만은 어떻게든 지켜 주려 애쓰는 것. 그게 하루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마침 회사 일이 뜸한 주와 겹친 덕분에 가능했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무너졌을 균형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 끝나갈 무렵, 내 안에 남은 건 지친 마음이 아니었다. 감사였다. 이게 가장 핵심 감정인 것 같다. 왜 하필 가장 고된 한 주의 끝에서 감사가 올라오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
그 와중에도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고민을 주고받았다.
오늘은 한 팀원이 나를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그랬다. 정승제가 꼽았다는 삶의 다섯 가지 태도(▶️ 영상), 그걸 내가 다 가지고 있다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작은 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사람에게 예의를 잃지 않는 것.
힘든 상황에서도 핑계에 머물지 않는 것.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
기분이 몹시 좋았다. 그런데 그 좋은 기분이 어디서 왔나 들여다보니,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고마움이었다. 이 다섯 가지는 내가 혼자 길러낸 게 아니었다. 부모님이 쥐여준 현실 감각과 안정감, 책임감. 아내가 매일 보태준 지지. 주변 사람들이 무심히 건넨 관심. 그것들이 내 안에서 다섯 가지 태도로 굳은 것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받아서 쌓인 것이었다.
이미 충분했다
겸손이라는 말을 오래 오해하고 있었다. 나를 낮추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건 좀 달랐다. 겸손은 내가 지금 배부른데, 이 배부름이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에 가까웠다.
가진 것의 양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더 가까운 말은 마음의 풍요다. 나는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 사람이었는데, 그걸 모른 채로 늘 부족하다고만 느꼈던 시간이 길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가진 것을 하나씩 빼 보았다. 이만한 벌이가 없었다면. 이 동네에 살지 않았다면. 아내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사는 처지였다면 —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마음의 여유가, 성장에 대한 갈증이,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설렘이, 과연 들어설 자리가 있었을까. 풍요로운 자리에 서 있어야 비로소 품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나는 줄곧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언젠가 행복이 무엇일까를 두고 쓴 글에서, 행복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자주 오는 작은 조각이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이번 한 주가 그 말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고된 와중에도 작은 조각들은 매일 떨어졌고, 그걸 주울 마음의 여유가 내게 있었다. 풍요란 더 갖는 게 아니라, 이미 떨어져 있는 조각들을 알아보는 눈이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행복은 무언가를 더 쥐는 게 아니라,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내가 놓인 상황을 온전히 바라보고, 내 삶을 스스로 생각해 결정해 나갈 수 있는 것. 그게 나에게는 행복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풍요로워야 한다. 특히 시간의 풍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한정된 그 자원을, 내가 정말 소중하게, 충분히 채워 쓰고 있다는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윤슬의 하원에 맞춰 돌아가 저녁을 차리는 그 한 시간이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고른 시간으로 느껴질 때, 거기서 풍요가 온다. 그리고 그 감각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작은 조각들이 매일 조금씩 모여야 비로소 채워진다.
문득 묻게 된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늘 무언가와 싸워 이겨야만 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겨서 끝내 손에 쥐려는 게, 어쩌면 이 조급하지 않은 마음 한 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걸 싸워서 얻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 곁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행복은 무용한 것을 사랑할 여유와 닮았다. 효율로는 영영 잡히지 않는 시간 — 윤슬이 가챠에서 뽑아 온 정체불명의 캐릭터, 책상 위에 어느새 자리 잡은 작은 인형, 천 번쯤 풀어 본 1+1을 또 천천히 적는 저녁. 그런 것들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굳이 곁에 두는 마음. 나는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써 둔 적이 있는데, 돌아보면 그건 자랑이 아니라 풍요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음에 무용한 것을 사랑할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 그 여유가 곧 행복이었다.
상담사
부부 상담을 받던 어느 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아내가 내 상담사 노릇을 하고 있다고. 그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으니까. 아내를 만나고부터 일이 술술 풀렸다고 늘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일이 풀려서 마음이 편했던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니까 일이 풀린 것이었다.
아내는 내 열등감과 자의식, 자기비판을 씻어냈다. 자격지심을 내려놓게 했고, 나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회복탄력성을 심어줬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다. 정작 본인은 자기 가치를 모르는 채로.
이번 한 주, 아내가 곁에 없는 동안 그걸 더 또렷이 알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눈이 반짝이며 뭐든 만들고 싶어 하던 나, 무언가에 몰입하고 창작하던 나 — 그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해야 할 일 목록뿐이었다. 윤슬과 제대로 놀아 주지도, 내 것을 붙들지도, 아내를 챙기지도 못하는 내가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그 활력은, 아내가 곁에서 매일 불어넣어 주던 것이었음을.
윤슬
그래서 윤슬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분명해졌다. 돈도, 감각도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받은 바로 그것, 무조건적인 지지다. 네가 하려는 게 무엇이든 옳다고 믿어 주고, 끝까지 해낼 수 있게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는 것.
회사의 가까운 형이 언젠가 말해 준 적이 있다. 아이에게 반드시 줘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긍정적인 내러티브라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회복탄력성. 그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절반만 알아들었다. 언젠가 그 생각을 글로 정리해 둔 적도 있다. 아이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는 못 그려」에서 「아직」으로 바꿔 주는 일. 그러니까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 말을 제대로 깨달은 건 이번이었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무엇인지,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 나는 아내에게서 그걸 직접 받아 봤으니까. 받아 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게 있다. 형이 말한 그 한 가지는, 결국 내가 받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자주 실패한다. 윤슬은 뭐만 하면 안 돼라는 말부터 듣는 아이가 되어 있다. 믿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질수록 아이가 자꾸 숨는 것만 같다. 그 돌아선 등을 볼 때가 제일 아프다. 뿌리가 되어 주겠다면서, 정작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래도 다행인 게 하나 있다. 윤슬 곁에는 아내가 있다. 나를 그렇게 일으켜 세운 사람이, 윤슬도 그렇게 키울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급한 성격을 핑계 삼지 않기로. 그것도 다섯 가지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이번 한 주, 정작 나를 다시 일으킨 건 윤슬이었다. 엄마가 없는데도 씩씩했다. 아침을 차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게라며 곁에 붙어, 계란찜은 자기가 하겠다고, 브로콜리는 자기가 삶겠다고 나섰다. 서툰 손으로 거드는 그 아침상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고된 한 주가 그 작은 손 덕에 견딜 만해졌다.
생각해 보면 윤슬은 참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제 감정도, 제 생각도 또렷하게 말할 줄 안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이 상황을 말로 해 보자고 늘 붙들어 온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걸 제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우리가 함께 쏟은 시간의 수확이었다. 효율이 영영 잡지 못한다던 그 시간들이, 한 사람으로 자라 내 앞에서 계란을 풀고 있었다.
종교가 있냐는 물음
얼마 전, 아는 사람이 물었다. 믿는 종교가 있느냐고. 나는 나교라고 답했다. 나 스스로를 믿는 종교라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진심이었다. 내가 바로 서야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고, 활력이 돌고, 삶이 고마워진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비로소 남을 챙길 수 있더라는 것 — 최근 들어 점점 더 또렷해지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아내가 빠진 이 이레 동안, 그 깨달음은 더 깊어졌다.
나교에는 기둥이 하나 더 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어그러지면, 원인을 바깥에서 찾기 전에 나부터 들여다본다. 환경도 상황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고칠 수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니까. 언젠가 다른 글에도 이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다. 모든 문제를 내 안으로 끌어오면, 신기하게도 거기서부터 길이 하나씩 놓이더라고.
그 습관이 요즘 들어 부쩍 단단해졌다. 돌아보면 주변 사람들의 신뢰 덕이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이 곁에 하나둘 쌓이자, 바깥과 싸울 일이 줄었고, 그만큼 안으로 돌아설 여유가 생겼다. 믿음을 받은 만큼, 나를 믿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기둥에는 위험이 하나 따른다. 모든 걸 나에게로 돌리다 보면, 자기책임이 어느새 자기비난으로 미끄러진다. 그래서 한 가지를 곁들여 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라면, 그 나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세우지는 말자고. 정말 버거운 날에는 주변 상황도 한 번 돌아보고, 나 자신조차 한 발 물러나 제삼자처럼 바라봐 주기로. 그렇게 나에게 숨 쉴 틈을 내어 주는 게, 나교를 오래 믿는 길인 것 같다.
이걸 뼈저리게 배운 게 올해다. 1월, 나는 처음으로 리더가 됐다. 정식 발령도 아닌 대행이라는 임시 명찰을 달고서. 떠난 이전 리더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하자, 1년 동안 빵꾸 한 번 내지 말자 — 그 책임감만으로 나는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여섯 팀이 모인 일을 난생처음 끌면서, 매일 뭘 하라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걸 전부 내 부족으로 돌렸다. 내 설명이 모자라서, 내가 리더감이 아니라서.
그때 곁의 좋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해줬다. 그건 네 문제가 아니라, 지금 상황이 그런 거라고 말해라. 처음 맡은 자리, 판이 바뀐 국면,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시기 — 그걸 전부 한 사람의 부족으로 욱여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를 두고 써 둔 회고에서도, 같은 자리에 떨어진 누군가에게 쓴 편지에서도, 나는 같은 문장을 거듭 적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머리로 쓴 그 문장을 정작 나 자신에게 돌려주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나를 몰아붙이던 손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다만 같은 한 주가 나교에 단서를 하나 달았다. 내가 믿는 그 '나'조차, 단 한 번도 혼자 선 적이 없었다는 것. 나를 세운 활력도, 마음의 여유도, 결국 받아서 쌓인 것이었다. 그러니 나교의 진짜 본문은 어쩌면 하루에 대한 감사인지도 모른다. 가장 고된 일주일의 끝에서도 남은 게 감사였다면, 그게 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일 테니까. 거창한 신앙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다시 붙잡을 수 있는 한 줄이다.
사실 이 감사에는 더 오래된 이름이 있다. 당연한 건 없다. 아내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해 온 말이다. 그때는 사랑의 다짐에 가까웠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하루를 감사하게 만드는 가장 짧은 주문이었다. 당연한 게 없다고 여기면, 떨어져 있는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다 고마워진다. 언젠가 감사를 두고 쓴 글에도 같은 문장을 적어 두었다. 감사란,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이라고.
돌려주고 싶다
오늘은 마음에 스친 감정이 참 많았다. 그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글로 붙잡지 못하는 게 아쉬울 만큼. 그래서 다 적지 못한 채로도, 이 한 줄만은 남겨 둔다.
받은 사람은 갚고 싶어진다. 그동안 내게 흘러든 격려와 사랑과 관심을, 나도 이제 흘려보내고 싶다. 가장 먼저는 아내에게. 그리고 윤슬에게. 나를 길러 주신 부모님께, 아내를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께.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좋은 사람이라 불러 준 그 팀원에게도.
내가 받은 배부름을, 아직 배고픈 누군가에게 한 그릇 옮겨 놓는 일. 그게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갚음인 것 같다.
여보, 그대는 그대의 가치를 모르지만,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의 절반은 그대에게서 왔소. 나머지 절반은, 그대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덕에 비로소 받을 수 있었던 것들이고.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결혼식에서 나는 축가를 불렀다. 해바라기의 ▶️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때는 그 노래가 내 다짐인 줄 알았다.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제목이 가리키던 사람은 처음부터 그대였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 행복을 먼저 받았기에, 나는 비로소 남에게도 행복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이 글의 마지막 줄은, 그날 부른 축가의 제목으로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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