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행복과 삶 — 세 질문의 답
돌아오는 자리
프롤로그에서 나는 세 개의 질문을 던졌다.
- 완전한 자립이란 무엇일까
- 행복이란 무엇일까
- 삶이란 무엇일까
이제 그 답을 내려놓으려 한다. 답이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내 입장 에 가깝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계속 고쳐 갈 것이다.
자립
자립은 혼자 서는 것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가치로 인정받고, 그 가치가 실제로 돈이 되어, 나를 계속 살게 하는 구조를 짓는 일.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 자립이다.
"돈"이라는 단어를 고백하는 데 오래 걸렸다. 내 생각이 가치 있다는 확인은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가 내 생각에 실제로 값을 매겼다 는 신호다. 그 신호가 꾸준히 돌아와야 나는 내 방식대로 계속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 혼자 지을 수 없다. 고객이 필요하고, 동료가 필요하고, 울타리가 되어 주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립은, 돌고 돌아 관계를 짓는 일이었다.
행복
행복은 큰 단어다. 그래서 나는 그걸 작은 순간으로 쪼개 둔다.
- 어제는 안 보이던 게, 오늘 한 겹 더 보일 때.
- 딸에게 가는 마음도, 일에 가는 마음도 — 떠밀려서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골라서 둘 때.
- 내가 낸 목소리에 누가 응답하고, 그게 또 다른 누구에게 이어질 때.
이 셋이 한날에 다 오는 날은 드물다. 그래도 하나만 와도 충분하더라고, 요즘의 나는 인정한다.
행복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자주 오는 작은 조각 이었다. (한참 뒤, 가장 고된 한 주의 끝에서 나는 이 조각들을 다시 줍게 된다.)
삶
삶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제 나는 굳이 한 문장으로 줄이지 않는다. 그냥 내 하루를 말한다.
아침엔 딸을 깨워 등원시키고, 낮엔 회사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 내 맘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모두의 힘을 한 점으로 모으려 애쓰는 일이다. 밤엔 좋아하는 개발을 하고,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하루의 나를 일기로 돌아본다.
어느 하나도 떠밀려서 하는 게 없다. 그리고 이 모두가 하나의 동심원이라는 것을, 옛사람들은 이미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 말은 대단한 이념이 아니다. 확장은 중심에서부터 일어난다 는 생활의 원리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가족을 돌볼 수 없고,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조직을 돌볼 수 없다. 거꾸로 가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순서를 무슨 깨달음으로 정리한 게 아니다. 그냥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내를 만나고, 딸을 낳고, 사람들의 성과를 돌려주고 회사의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가 되고서야 — 이런 규모의 책임을 나는 처음 느꼈다. 솔직히, 너무 무겁다.
모순과 동거하기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평온하다는 뜻은 아니다.
혼자는 가볍고 편하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그냥 어떻게든 잘되겠지 하고 믿어 버리면 — 오히려 모든 게 더 순탄히 풀리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나 싶고, 또 괜히 멀쩡한 일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나 싶다. 어느 쪽이 맞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하나는 안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은, 결국 다 어딘가에 걸린다는 것.
순리대로.
요즘 그 말을 자꾸 입안에서 굴린다. 이래도 되나, 하면서.
그리고 무게는 책임만이 아니다. AI가 내 말을 멀리 가게 해 준 만큼, 내 말의 무게도 커졌다. 내가 틀린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면 어떡하지? 이 확신이 다 편향이면 어떡하지? 이 자기의심은 지금도 매일 나를 흔든다.
그러나 나는 이 의심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책임감의 다른 얼굴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목소리를 낼수록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쪽이 위험할 것이다.
글이 남긴 것
이 시리즈를 쓰면서 다시 확인한 것이 있다.
사람에게 글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배웠을까.
글은 생각을 밖에 내놓아, 내가 생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울이다. 이 일곱 편을 쓰면서 나는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다시 봤고, 변해 가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옛사람들이 글을 남긴 이유가 있다. 역사가 쌓이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 끝자락에서 오늘의 내 한 편을 얹는다.
프롤로그로 돌아가서
내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내 게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어 가는 구조 속에서만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답은 결국 이것이다.
자립은 혼자가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일이다. 행복은 자주 오는 작은 조각이다. 삶은 어느 하나도 떠밀려 하지 않는 하루다.
그리고 이 답은 완결이 아니다. 내일의 내가 또 고칠 것이다. 이 글도, 이 시리즈도, 결국 하나의 부트스트랩에 불과하다.
끝그림은 여전히 저기에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 오늘 몫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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