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혼자가 되려고 했었다
들어가며
완전히 혼자가 되려고 했었다.
내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내 규칙으로, 내 속도로, 내가 정한 방향으로.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그 길에서 내가 익혀 온 모든 것이 — 사실은 여럿이 함께 일할 때 가장 필요한 것들이었다는 걸.
왜 혼자가 되고 싶었나
솔직히 말하면, 그 뒤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 몰라주는 순간. 의견을 내놓았는데 거절당하는 순간. 내가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런 것들이 쌓였다.
나는 how에 대한 철학이 강한 사람이었다. 클린 코드, 좋은 설계, 애쓰는 대인관계 — 모든 것에 내 기준과 고집이 있었고, 그만큼 다른 사람과 일할 때마다 충돌이 잦았다. 그 고집을 내려놓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혼자가 되고 싶었다. 혼자라면 내 규칙이 곧 세계의 규칙이니까.
컴퓨터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컴퓨터와의 대화는 정말로 그랬다.
why와 what이 주어지면, 그 뒤의 구조도, 설계도, 파이프라인도, 프로세스도 — 모두 내 영역이었다. 내 생각을 그대로 주입하면 그대로 동작했다. 충돌이 없었다. 협상이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컴퓨터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러니
그런데 뒤늦게 알아채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혼자이고 싶어서 붙잡고 익혀 온 것들 — 요구를 쪼개는 법, 작게 시작해서 키우는 법, 피드백을 받고 다시 고치는 법, 추상을 세우고 허무는 법 — 이 모두가, 지금 내가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언어였다.
매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원래는 컴퓨터에게 걸던 말이, 이제 사람에게 걸리는 말이 되었을 뿐.
회사는 울타리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뒤늦게 알아채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회사는, 사실 든든한 가족 같은 울타리였다. 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먹이고 키워 준, 그런 울타리였다.
아이를 키워 보니 이해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아이가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부모는 울타리가 된다. 내가 회사에 대해 느꼈던 답답함 — 평가받고, 거절당하고, 좁다고 느끼던 그 감각 — 은, 어쩌면 내가 아직 자랄 중이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늘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않으려 한다. 내 생각이 언제나 옳고, 언제나 받아들여진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회사에서도 나는 매일 평가받는다. 내 의견은 어떤 날은 받아들여지고, 어떤 날은 거절된다. AI가 내 말을 조금 더 멀리 가게 해주었지만, 그만큼 자기의심도 깊어졌다 — 내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면? 이 방향이 맞기는 한가?
앞으로도 나는 어디서든 치열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내 생각이 세상에 닿으려면, 먼저 세상의 저울에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가려는 곳
나는 여전히 자립을 추구한다. 나는 여전히 내 게임을 만들고 싶다.
다만 지금 내가 말하는 자립은, 혼자 서는 일이 아니다.
내 생각이 가치로 인정받고, 그 가치가 실제로 돈이 되어 나를 계속 살게 하는 구조를 짓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자립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짓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다같이 잘하는 법" 을 지나야 한다.
수신(修身)에서 시작한다
어느 순간 옛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를 먼저 닦고, 그다음에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그다음에 나라를 다스리고, 그다음에 천하를 평하게 한다. 옛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확장은 중심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내가 먼저 바로 서야 비로소 남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몸으로 다시 배운다.
나는 지금 나, 아내, 딸, 가족, 회사, 그리고 내가 속한 이 나라 — 이 모든 곳에 매일 진심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실은 하나의 동심원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아 가고 있다.
세 개의 질문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 세 개의 질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 완전한 자립이란 무엇일까
- 행복이란 무엇일까
- 삶이란 무엇일까
답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열겠다. 그 전까지는 —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한 편씩 고백하듯 풀어내려 한다.
프롤로그는 여기까지다.
사람에게 글이 없었다면, 이런 배움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걸 다시 배운다.
이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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