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가야 하나 — 가운데서 순서를 보는 일
병렬로 마구 시켰다
에이전트에게 일을 최대한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을 이것저것 나눴다. 세션을 따로 열고, 한 놈은 이것, 한 놈은 저것, 병렬로 마구 돌렸다. 손이 여럿이면 그만큼 빨라질 줄 알았다.
나중에 열어 보면 부딪쳐 있었다. 한쪽이 전제로 삼은 걸 다른 쪽이 바꿔 놓았고, 먼저 끝났어야 할 일이 뒤에 와 있었다. 각자는 열심히 했는데, 합쳐 놓으면 꼬였다.
처음엔 나누는 방식이 서툴러서 그런 줄 알았다. 더 잘게, 더 깔끔하게 나누면 되겠지. 몇 번을 다시 나눠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이 났다. 나누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운데서 보는 눈
빠져 있던 게 뭔지 한참 뒤에 보였다. 각자 하는 작업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가 — 아, 이거 종속성 꼬였네. 이거 먼저 하고 저거 하는 게 맞는데 — 하고 알아채는 눈.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몇 놈을 멈춰 세우고, 순서대로 다시 풀어 주는 손.
에이전트 하나하나는 자기 일만 본다. 자기 세션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그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밖에서 전체를 봐야 한다. 규칙을 더 정교하게 적어 준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가운데 서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돌아보니 내 일이었다
그 자리를 떠올리다가 멈칫했다. 이거,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잖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 일은 엄청나게 잦다. 내가 보고 있다가 — 아, 이 일은 저 부서에서 먼저 해야 우리가 할 수 있네. 이건 우리 부서가 하고 나서 저 부서가 이어받아야 하네 — 하고 순서를 잡는다. 각자의 종속성이 보이게 만들고, 그 순서대로 일이 돌아가게 한다. 그래야 여럿이 동시에 움직이면서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끝난다. 동시다발은 순서가 보일 때만 빠르다.
아무리 프로세스를 잡고 규칙을 세워도 초기에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더라고. R&R이 모호하고, 이 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구간. 거기서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이 순서를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면 이 일은 줄어든다. 줄어드는 게 정상이다. 그때까지 누군가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에이전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에이전트와 일하는 초기 구간에 있다. R&R은 모호하고, 작업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니 그 자리가 필요하다. (📝 하네스를 짜다가 같은 주에 사람 조직에서 같은 원리를 발견했던 글과 이어진다. 그때는 위임과 방임의 차이였고, 이번엔 순서였다.)
아직 못 본 것
이런 서비스를 아직 못 본 것 같다. 에이전트를 여럿 굴리는 도구는 많은데, 그 사이에 서서 종속성을 읽고 멈췄다가 순서대로 재개시키는 것 — 그 자리를 맡겠다는 물건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에이전트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데 바쁘다. 내가 겪은 건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게 엄청 필요할 거라는 감이 온다. 나한테 필요했으니까. (📝 내가 만든 도구는 전부 처음엔 내가 필요해서 만든 것이었다는 걸 이미 한 번 적었다.)
적어 둔다
codepoet에 하나 만들고 싶다. 아니면 따로 만들어서 팔아 볼까 — 팔릴지는 솔직히 애매하다. 만들어 파는 게 되는 종류의 물건인지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적어 둔다. 지금 보이는 건 이것뿐이다. 각자 열심히 하는 손들 사이에, 순서를 보는 눈 하나. 회사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와 같은 자리가, 에이전트들 사이에도 비어 있다.
누가 먼저 가야 하나. 그걸 보는 게 아직은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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