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Poet / Essay

공책에 그린 보드게임

재미이론이라는 책을 붙들고 좋아했던 게임들을 줄줄이 적다가, 내가 왜 배우는 게 재밌는지를 묻게 됐다. 지난 글들을 다시 펼치고 나서야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 어릴 때 공책에 칸을 긋고 만든 보드게임을 누군가와 같이 하던 때. 평생 찾던 기쁨이 거기 있었다. 개발자가 되는 건 그 공책을 넓히려던 손이었고, AI 덕에 공책이 다시 내 손에 돌아왔다.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재미는 AI가 가져갔지만, 사람이라는 끝없는 판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래 붙든 콘텐츠는 하나같이 무언가를 가르쳐 줬다 — 누군가 그걸 깨닫고 웃는 얼굴을 보는 것, 그게 충만감이었다.
2026-10-17 · 3회 읽음
재미배움놀이터콘텐츠리더AI회고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을 읽고 있었다. 핵심이 뭐냐고 AI에게 물었다.

재미는 뇌가 패턴을 배우는 순간의 느낌이다.

한 줄이었다. 다 배우면 지루해지고, 패턴이 안 보이면 잡음이 된다. 재미는 그 사이, 배울 게 조금씩 남아 있는 자리에 있다고.

신기해서 게임을 하나씩 대 봤다. 테트리스, 캔디크러시, 메이플스토리, 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모바일 게임. 그러다 내가 좋아했던 게임들을 줄줄이 적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리그 오브 레전드. 프리스타일, 프리스타일 풋볼. 풋볼매니저는 2020년판부터 해마다. 피파. 서든어택. 배틀그라운드. 폴아웃 쉘터. 둥지짓는 드래곤. 엑스컴 1, 2. 바이오쇼크. 포켓몬스터.

적어 놓고 같은 틀로 하나씩 풀어 보니 모양이 비슷했다. 거의 다 사람과 겨루거나, 깊은 시스템 안에서 내 판단이 결과로 돌아오는 게임이었다. 배울 거리가 마르지 않는 것들. 손맛이나 뽑기로 붙잡는 게임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배우는 게 재밌나.

요즘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까지 같이 들고, 지난 글들을 다시 펼쳐 봤다.

지난 글들에 남아 있던 것

딸아이의 원리셈을 보다가 왜 이걸 한 달이나 시키지에서 시작해 인지과학까지 파고들었던 날이 있었다. (📝 1+1을 천 번 반복시키는 이유.) 아이의 작업 기억과 LLM의 맥락 창이 닮았다는 걸 알아챈 대목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고 적어 두었다. 공부를 아예 번역이라고 부른 글도 있었다. (📝 결국 공부라는 것, 이 모든 게 번역이었나?.) 모르는 걸 아는 것에 이어 붙이는 순간.

꺼내야 배운 게 된다고 쓴 글도 있었다. (📝 꺼내지 않으면, 배운 게 아니다.)

그리고 지난주. 리더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세다가 마지막에 겨우 하나를 적었다. 가장 행복했던 장면은 많은 사람 앞에서 내 생각이 이래요 하고 꺼내 놓던 날이었다고. (📝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세어 보았다.)

잇고, 꺼내고, 건넨다. 세 순간이 늘 같은 순서로 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건 마지막이었다.

공책 한 장

그러다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때 공책에 칸을 긋고 규칙을 적어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그걸 펴 놓고 누군가와 같이 했다. 상대가 내가 만든 규칙 위에서 고민하고, 웃고, 이기려고 애쓰던 얼굴.

아.

내가 만든 재미의 패턴을, 내가 만든 놀이터를, 누군가 즐기는 것. 그게 가장 즐거웠다. 평생 그걸 찾고 있었다.

공책 한 장이었다.

개발자는 방법인 줄 알았다

개발자가 되는 게 그 방법인 줄 알았다. 더 큰 걸, 원하는 걸 내 손으로 만들 수 있게.

돌아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개발이 목적이 아니었다. 공책을 넓히려던 손이었다. 그런데 손이 커질수록 혼자서는 모자랐다. 큰 놀이터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규칙은 내 규칙이 아니게 됐다. 그래서 혼자가 되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 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혼자가 되려고 했었다.)

AI가 오면서 그게 바뀌었다. 이제 혼자 다 할 수 있게 됐다. 기획도, 그림도, 코드도, 올리는 일도. 혼자 만들어서 바로 건넬 수 있다.

공책이 다시 내 손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원하던 걸 할 수 있는 자리에 와 있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계속 배우면서.

그런데 재미 하나를 가져갔다

하나가 더 따라왔다.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재미는 AI가 가져갔다. 새 도구, 새 언어, 새 렌더러 — 예전엔 몇 주씩 붙들고 익히던 것들이 이제는 하루면 손에 들어온다. 코스터의 말로 하면 그 판은 금방 다 배운 판이 되어 간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데서 배워야 한다.

좋아한 게임 목록을 다시 봤다. 가장 많은 건 사람과 겨루는 게임이었다. 상대가 사람이라 배울 거리가 끝나지 않는 게임.

그리고 리더 자리.

사람 하나하나가 매번 새 패턴을 들고 온다. 그건 AI가 대신 배워 줄 수 없다. 리더의 일을 다시 보니, 그것도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었다. 끝이 있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짧게 나눌 자리를 붙이고, 잘한 걸 돌려줄 길을 찾고 — 지난주에 들고 가려던 가안 한 장이,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판의 규칙이었다.

아, 이럴 수가.

이 자리를 맡게 된 게 천운이었구나.

지금이 힘든 건 아마 첫 판이라서다. 규칙이 아직 안 보이고, 판은 바뀌었고, 잘했다는 신호는 늦게 온다. 게임이 나빠서가 아니라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 처음 하는 게임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콘텐츠라는 판

그러고 나서 하나가 더 보였다. 게임만이 아니었다.

좋아한 것들을 마저 적어 봤다. 만화는 드래곤볼, 강철의 연금술사. 영화는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어벤저스. 모아나, 겨울왕국, 업 — 디즈니와 픽사는 거의 다. 아이들 보라고 만든 인사이드 아웃 1, 2도 나한테 깨달음을 줬다. 노래는 김광석, 이문세, 박효신, 악동뮤지션.

적어 놓고 보니 또 겹치는 게 있었다.

규칙이 분명한 세계. 강철의 연금술사의 등가교환, 인셉션의 꿈의 층, 테넷의 거꾸로 가는 시간. 규칙을 익히고 나면 다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들이 어렵다고 고개를 젓던 테넷도 나는 그 맛에 봤다.

대가를 치르는 선택. 엑스컴에서 죽은 대원은 돌아오지 않는다. 에드는 팔을 내주고 동생의 영혼을 붙잡았다. 인터스텔라의 아버지는 딸과 보낼 시간을 내주었다.

겨루기와 팀. 스타, 롤, 프리스타일 3대3. 드래곤볼에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고, 어벤저스에선 능력이 다른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결말. 업의 할아버지가 찾아 헤맨 모험은 이미 곁에 있던 삶이었다. 겨울왕국의 진정한 사랑은 왕자가 아니라 자매였다. 인터스텔라는 끝내 딸에게로 돌아간다.

노래는 조금 결이 달랐다. 꾸미지 않고 덤덤하게, 내 생각이 이래요 하고 건네는 노래들이었다.

목록을 덮으려다 하나가 더 걸렸다. 세계가 곧 판인 것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꼬리칸에서 앞칸으로 간다. 한 칸을 지날 때마다 새 세계가 열리고, 맨 앞에 가서야 이 판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지막에 고른 건 앞칸이 아니라 문을 열고 판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기생충은 반지하에서 언덕 위 저택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높낮이가 곧 계급이라는 규칙을 말없이 보여 준다. 아바타는 다른 몸에 들어가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이야기였다. 영화 한 편이 통째로 그 세계를 익히는 길이었다.

사람을 탓하는 대신 판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보는 눈. 감독은 그 눈으로 사회를 찍었다. 나는 같은 눈으로 회의실을 읽고 있었다. (📝 회의실의 모두가 킹이었다.)

생각해 보니 공책에 칸을 긋던 일도 그랬다. 칸을 어디에 긋느냐가 곧 규칙이었다. 나는 그때 작은 세계를 하나씩 짓고 있었다.

빠진 것도 보였다. 손맛이나 뽑기, 습관으로 붙잡는 건 하나도 없었다.

기승전결도 다르게 읽혔다. 기에서 패턴 하나를 보여 주고, 승에서 쌓고, 전에서 알던 걸 뒤집고, 결에서 그게 내 것이 된다. 그리고 다 배워 지루해지기 전에 이야기는 스스로 끝난다. 이야기 한 편이 배우는 순서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아, 이게 콘텐츠였구나.

재미의 패턴을 담아 건네는 것. 내가 가장 즐긴 건 늘 그걸 받는 순간이었다.

공책에 그린 보드게임도 같은 모양이었다. 내가 그은 칸. 내가 정한 규칙. 그 위에서 상대가 고민하는 선택. 마주 앉은 사람. 내가 처음 만들어 건넨 콘텐츠였다.

함박웃음

그래서였나 보다. 요즘 강의를 하고 싶다고, 교육을 하고 싶다고 자꾸 말했던 게.

게임이 아니어도 된다. 사람들이 즐겁게 겪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면. 누군가 아 하고 깨닫고, 그게 좋아서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 그걸 보고 싶었나 보다.

딸아이와 신나게 놀아 줄 때가 있다. 아이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면 마음 깊은 데서 행복이 우러나온다. 그때 나는 살아 있다고 느낀다. (📝 마음의 풍요.)

공책 앞에 앉아 웃던 친구의 얼굴. 딸아이의 함박웃음. 돌아보니 같은 얼굴이었다.

충만감이었다.

그걸 내 주변 모두에게 주고 싶다.

즐기기로 한다

즐기기로 한다. 내가 뭘 모르는지부터 배워 나가기로 한다.

기술은 이제 AI가 대신 배워 줄 것이다. 사람은 다르다 — 실제 사회에 나가서만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배울 건 사람이고, 사회다.

하나 더 있다. 내가 먹고 살 기반.

그럼 사람은 배우려고 사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냥 행복하려고 사는 것 같다. 배움은 내가 그리로 가는 가장 굵은 길이었다.

돌아보면 내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모르던 패턴이 보이는 순간. 내가 만든 판을 누가 즐기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이 웃는 얼굴. 그리고 그걸 계속할 수 있게 받쳐 주는 먹고 살 기반.

이 여러 겹이 한데 맞물려서, 지금 나를 채우고 있다.

대학원은 아직 모르겠다. 거기서 바라는 게 깊이인지, 나를 봐 줄 사람인지, 끝이 있는 목표인지, 그 시간을 써도 된다는 허락인지 — 그 한 문장부터 적어 보려 한다.

이걸 사람들 앞에서 말로 하기는 좀 부끄럽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마음을 무언가로 만들어 건네고 싶다. 게임이든, 강의든.

만드는 법은 어렴풋이 보인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늘어놓으면 내가 좋아하는 재미의 패턴이 보이지 않을까. 거기에 내 이야기와 내 눈에 예쁜 것을 얹으면 된다. 내가 만든 판 위에서 누군가 이 이야기를 겪고, 웃고, 조금 고민하다 가도록.

그 전까지는, 이 글이 첫 공책이다.

이 글에 남긴 포스트잇0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

이어 읽을 글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세어 보았다리더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올해 내내 있었다. 디렉터와 이야기하기 전에 그 이유를 하나씩 세어 보았다. 가운데 낀 양가감정, 실무를 못 하는 우울, 줄 수 있는 게 칭찬뿐인 손, 끝이 없는 목표, 정해지지 않은 AI 사용료. 아무나 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저점을 올리는 일이지 고점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보였다. 세다 보니 이유들이 한 곳을 가리켰다 — 일은 한데 모였는데, 일하는 판은 각자 하던 때 그대로였다. 하소연 말고 가안 한 장을 들고 가기로 한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 채로. 다시 읽고서야 R&R은 어떻게 짜든 부딪힌다는 것, 가장 큰 빈칸은 내 기준이었다는 것이 보였다.북쪽이라고만 말했다한참 준비한 일을 사내 소프트런칭으로 내놓았고 결과도 좋았다. 잠깐 행복했고, 그다음엔 우울이 왔다. 대기업과의 경쟁, 모호한 지시, 북쪽을 보자는데 동쪽 서쪽으로 뛰는 사람들, 그리고 일 잘하던 팀원의 퇴사. 위에서 내려오는 말이 흐릿하다고 답답해하던 내가, 아래에는 '북쪽'이라는 방향 한마디만 건넸다는 걸 알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내가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건 기대하는 결과를 분명히 하는 것뿐이었다 — 아직 우울한 채로, 그 말하는 법부터 연습하기로 한다.지워도 되는 것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기대가 다 나에게로 모이는데, 목록의 한 줄도 자를 수가 없던 밤. 지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지워도 되는 게 뭔지 몰라서였다. 물속에서야 순서가 보였다 — 진작 못 자른 게 아니라, 이제야 자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v2026.10.31.1 · 2026.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