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Poet / Essay

북쪽이라고만 말했다

한참 준비한 일을 사내 소프트런칭으로 내놓았고 결과도 좋았다. 잠깐 행복했고, 그다음엔 우울이 왔다. 대기업과의 경쟁, 모호한 지시, 북쪽을 보자는데 동쪽 서쪽으로 뛰는 사람들, 그리고 일 잘하던 팀원의 퇴사. 위에서 내려오는 말이 흐릿하다고 답답해하던 내가, 아래에는 '북쪽'이라는 방향 한마디만 건넸다는 걸 알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내가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건 기대하는 결과를 분명히 하는 것뿐이었다 — 아직 우울한 채로, 그 말하는 법부터 연습하기로 한다.
2026-10-09
리더우울기대 결과퇴사회고

한참을 준비한 일이었다. 사내 소프트런칭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침내 사람들 손에 건넸다.

결과가 좋았다. 숫자보다 먼저 장면이 왔다. 사람들이 그걸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그것도 꽤 좋은 것들을. 서비스는 멈추지 않고 돌았고,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대로 굴러갔다. 그리고 만든 사람들 얼굴에 자부심 같은 게 떠 있었다.

그 얼굴들을 보는 동안은 행복했다. 잠깐이었다.

다음 산

그다음 일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막막했다.

이번엔 대기업과 겨뤄야 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모호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면 비슷한 크기의 말이 다시 돌아왔다. 말은 오가는데 닿지 않았다. 소통이 답답했다.

그리고 팀이 있었다.

주관이 뚜렷하면서 나와 같은 쪽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았다. 다 같이 북쪽을 보고 달리자고 했는데, 누군가는 동쪽으로, 누군가는 서쪽으로 뛰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한 건 — 그 엉뚱한 일 가운데 쓸모 있는 것들이 섞여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틀렸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일을 저질러 놓는 사람도 있었다. 수습은 내 몫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속 터지는 소리를 들은 날도 있었다.

다들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일 밖에서는 다 좋은 사람들이다. 열정적이고, 열심히 한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데로 가지.

화요일

이번 주 화요일, 팀원 한 분이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일 잘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든 마음은 부럽다였다. 그 마음이 먼저 와서 나도 놀랐다.

그 뒤로 여러 마음이 한꺼번에 왔다. 왜 나가지. 무슨 마음이었을까. 내게 막을 권리가 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어느 하나에도 답을 못 한 채로 하루가 지나갔다.

부럽다는 마음은 오래 남았다. 들여다보니 그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리더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올해 초부터 계속 있었다. 두 자리 모두에서. 꺼내 놓지 않았을 뿐이다.

손 밖

나는 언제나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고민이 나 혼자 풀면 되는 거라면 힘들지 않았을 거다. 개발자로 살 때는 그랬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만큼 코드가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의 고민은 다른 사람을 움직여야 풀린다. 그건 내 손을 넘어선다. 내가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해 보자, 저렇게 해 보자. 말은 할 수 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같은 말인데 누구에겐 닿고 누구에겐 닿지 않는다. 그 차이를 내가 정할 수는 없었다. (📝 컴퓨터에게 걸던 말과 사람에게 걸리는 말이 다르다는 건, 올봄에 이미 적었다. 그땐 기술의 문제였는데, 이번엔 마음의 무게로 왔다.)

북쪽

피드백을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칭찬할 때는 구체적으로 한다. 무엇이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그런데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뭐라고 했던가. 북쪽. 그 한마디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모호하다고 답답해하던 마음을 그대로 들고 아래를 봤다. 저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을 건넸나. 방향이었다. 북쪽에 가서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는 — 말하지 않았다.

동쪽으로 뛴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북쪽이라는 말만 듣고, 자기 눈에 가장 북쪽 같아 보이는 데로 뛴 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위를 보며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 큰 그림 하나 걸어 두고 '싸워'라고만 하던 날을, 석 달 전에도 적었다.)

그러다 보였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내 손 밖이다. 그런데 무엇을 건네느냐는 내 손안에 있다.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건, 기대하는 결과를 분명히 하는 것뿐이었다.

방법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받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게 놓고 보니 들어주지 않는 사람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내 방법을 안 따른 것뿐이라면, 결과만 맞으면 된다. 엉뚱한 데서 쓸모 있는 걸 들고 오던 사람에게도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같은 말을 위로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모호한 지시 앞에서 답답해할 게 아니라 — 기대하시는 결과가 이건가요 — 내가 먼저 되물어야 했다.

아직

분명하다는 게 뭔지, 일단 네 줄로 적어 둔다.

  • 무엇을 — 가져올 것
  • 얼마나 — 어디까지면 된 것인가
  • 어떻게 확인하나 — 받았을 때 맞는지 무엇으로 보나
  • 왜 — 이게 왜 지금 필요한가

사실 처음 아는 게 아니다. 방향에도 정밀도가 있다고, 북극성 하나로는 첫걸음이 갈린다고, 여름에 내 손으로 적었다. (📝 결과물을 내기 위해 산 적이 없다.) 알고 있었는데, 막상 사람 앞에 서니 입에서는 북쪽이 먼저 나왔다. 아는 것과 말이 되는 것 사이가 이렇게 멀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기로 한다. 몇 번은 또 북쪽이 먼저 나올 거다.

우울이 걷힌 건 아니다.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그대로다. 나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모른다. 다만 내일 나를 잴 자는 바꿔 두었다. 사람들이 움직였나가 아니라, 내가 분명히 건넸나로.

좋은 결과 다음 날이 이런 거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글에 남긴 포스트잇0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

이어 읽을 글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세어 보았다리더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올해 내내 있었다. 디렉터와 이야기하기 전에 그 이유를 하나씩 세어 보았다. 가운데 낀 양가감정, 실무를 못 하는 우울, 줄 수 있는 게 칭찬뿐인 손, 끝이 없는 목표, 정해지지 않은 AI 사용료. 아무나 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저점을 올리는 일이지 고점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보였다. 세다 보니 이유들이 한 곳을 가리켰다 — 일은 한데 모였는데, 일하는 판은 각자 하던 때 그대로였다. 하소연 말고 가안 한 장을 들고 가기로 한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 채로. 다시 읽고서야 R&R은 어떻게 짜든 부딪힌다는 것, 가장 큰 빈칸은 내 기준이었다는 것이 보였다.공책에 그린 보드게임재미이론이라는 책을 붙들고 좋아했던 게임들을 줄줄이 적다가, 내가 왜 배우는 게 재밌는지를 묻게 됐다. 지난 글들을 다시 펼치고 나서야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 어릴 때 공책에 칸을 긋고 만든 보드게임을 누군가와 같이 하던 때. 평생 찾던 기쁨이 거기 있었다. 개발자가 되는 건 그 공책을 넓히려던 손이었고, AI 덕에 공책이 다시 내 손에 돌아왔다.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재미는 AI가 가져갔지만, 사람이라는 끝없는 판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래 붙든 콘텐츠는 하나같이 무언가를 가르쳐 줬다 — 누군가 그걸 깨닫고 웃는 얼굴을 보는 것, 그게 충만감이었다.지워도 되는 것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기대가 다 나에게로 모이는데, 목록의 한 줄도 자를 수가 없던 밤. 지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지워도 되는 게 뭔지 몰라서였다. 물속에서야 순서가 보였다 — 진작 못 자른 게 아니라, 이제야 자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v2026.10.31.1 · 2026.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