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게 걸던 말, 사람에게 걸리는 말
컴퓨터와의 대화
why와 what이 주어지면, 구조도, 설계도, 파이프라인도, 프로세스도 — 전부 내 영역이었다.
내가 생각한 흐름대로 함수를 쪼갰고, 내가 생각한 모델로 데이터를 담았고, 내가 생각한 순서로 배포 파이프라인을 엮었다. 충돌이 없었다. 협상이 없었다. 컴퓨터는 내 생각을 주입받으면 주입받은 대로 동작했다.
그 시간이 나에겐 편했다. 무엇보다 — 공평했다. 내가 잘 쓰면 좋게 동작했고, 못 쓰면 나쁘게 동작했다. 결과가 나에게만 귀결되는 일은 차라리 단순했다.
사람과의 일
사람과의 일은 달랐다.
일을 하기 위한 프로세스, 파이프라인, 구조, 설계 — 내 머릿속에 그것들이 또렷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나 혼자 끝낼 수 없었다. 다같이 공감하고, 같이 해내야 한다. 그러면 그 구조는 더 이상 내 생각이 아니다. 모두의 생각이 모여 다시 빚어진다.
처음엔 그 과정이 손해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미 다 설계해 놓았는데, 왜 회의를 하고, 왜 의견을 모으고, 왜 "이해시켜야" 하는가. 이해는 명세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 이것이 how의 철학이 강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why·what·how의 분업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나에게 다음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why와 what은 종종 위에서 내려온다. 경영진, 조직장, 그리고 시장이 던지는 신호. 이 방향이 옳다는 결정의 무게를 내가 전부 떠안을 수 없다. 나는 그 방향을 따르고, 그 안에서 내 판단을 얹는다.
how는 실무자의 손에 있다.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가장 귀하다. 내가 상상한 구조는 현장의 디테일 앞에서 종종 틀린다. 나는 듣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가진 how의 철학 — 클린한 구조, 작은 단위, 피드백 루프 — 은 주장이 아니라 제안 으로만 들어가야 한다. 주관을 유지할 부분과 유지하지 않을 부분의 경계를, 매번 새로 찾아야 한다.
리더는 모호함과 싸우는 자리다. 앞서 쓴 글의 한 줄이 여기서 다시 떠오른다.
매체가 바뀌었을 뿐
그런데 이 모든 얘기가, 사실은 컴퓨터와의 대화와 구조적으로 같은 일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 요구를 쪼개는 법
- 작은 단위로 시작하는 법
- 받은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고치는 법
- 추상을 세우고 허무는 법
- 명세를 명확히 쓰는 법
이것들은 전부 내가 컴퓨터에게 말을 걸면서 익힌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지금 내가 사람들과 일할 때 가장 자주 꺼내어 쓰는 도구다.
매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건, 그러나 중요한 건
다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컴퓨터는 내 명세에 감정이 없다. 컴퓨터는 내 방식에 상처받지 않는다. 컴퓨터는 거절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 모든 것이 있다.
그래서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사람에게 걸리는 말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듣고 나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아직도 배우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여전히 how에 대한 철학이 강한 사람이다. 다만, 그 철학을 타인의 속도에 맞춰 풀어내는 법을 이제 조금씩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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