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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Poet / Essay
AI시대 우리 가족 우당탕탕1 / 2

헤이 구글, 아침 7시에 깨워줘

초1 딸이 매일 6시에 귀에 대고 깨우길래 헤이 구글 알람을 가르쳤더니, 그걸 내 귓속에다 외친 아침. 시리즈 'AI시대 우리 가족 우당탕탕' 1편.
2026-05-17 · 7회 읽음
가족AI헤이구글우당탕탕시리즈1편

매일 6시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등원 때문에 같이 노는 시간이 줄어서, 아침 7시부터 식사 전까지를 우리 둘이서 쓰기로 했다. 아빠 노릇의 가장 행복한 한 시간이다.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고른 시간 — 나중에야 그걸 풍요라고 부르게 됐다.

문제는 딸이 그것보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녁 8시 반에 재우려 해도 잠드는 건 10시쯤. 자기 방에서 자기 시작해도 아침엔 우리 방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있다. 좁다, 덥다, 꾸시렁거리면서 우리 단잠을 다 깨운다. 거기까진 괜찮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새벽, 부부 침대 한가운데 비집고 들어와 신나게 떠드는 잠옷 차림 딸과, 옆에서 안경 쓴 채 비몽사몽 찌푸린 아빠의 만화풍 삽화

시계는 모른다는 아이

"아빠. 언제 일어나요. 아빠. 일어나라구요. 나랑 놀기로 했잖아요!"

귀에 대고 또박또박. 시계를 보면 앞자리가 6이다.

"윤슬아, 7시 넘어서 깨우라고 했잖아." "저는 시계를 볼 줄 모른단 말이에요. 앙앙아앙아!!!!"

시계 못 보는 게 자랑인가 싶다가도, 그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약해질 때쯤 또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깨우니까, 이게 적반하장이다. "너 시계 보는 법 배우라고 했지!" 해도 안 배운다. 배울 마음이 없는 아이에게 가르치는 건 무의미하다.

헤이 구글한테 시키자

머리를 굴렸다. 우리 집엔 헤이 구글이 있다. 평소에 "헤이 구글, 지금 날씨!" "헤이 구글, 아파트 노래 틀어줘!" 정도는 잘 한다.

"윤슬아. 헤이 구글한테 7시 되면 알람 울려달라고 해. 알람 울리면 아빠 깨우러 와."

스스로 생각해도 훌륭한 해법이었다. 시계는 못 배워도 이건 하겠지.

침대에서 머리 위에 전구를 켜고 묘안을 떠올린 듯 협탁 위 스마트 스피커를 가리키는 안경 쓴 아빠와, 흥미롭게 지켜보는 딸의 만화풍 삽화

며칠 평화

며칠은 정말로 평화가 왔다. 딸은 거실에서 엄마랑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은 늦잠을 잤다. 7시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우당탕 들어와서 "아빠!" 했다.

이게 며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침 일찍 운동을 가서 거실이 비어 있던 날이었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간지러웠다. 작고 따뜻한, 손과 입이 너무 가까운 종류의 간지러움.

"헤이 구글. 7시 알람 울려줘."

내 귓속에서.

자고 있는 아빠 귀에 손나팔을 대고 명령을 외치는 딸, 눈이 번쩍 뜨인 안경 쓴 아빠의 만화풍 삽화

그걸 왜 내 귀에

헛웃음이 터졌다. 헤이 구글한테 시키라 했지, 내 귀에 대고 헤이 구글한테 시키라 하진 않았다. 알람 명령이 거실 스피커가 아니라 를 향해 발사됐다는 사실 앞에서, 누가 누구를 깨우는 시스템인지 다시 정리하고 싶어졌다.

시계를 봤다. 6시 40분.

내가 졌다, 우리딸.

베개에 뻗어 하얀 항복 깃발을 흔드는 안경 쓴 아빠와, 침대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두 손 든 딸의 만화풍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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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는 게 아니라 건네는 것"제가 시계를 왜 알아야 돼요." 적반하장 같던 그 물음이 사실은 정당했다. 스스로 하라는 요구가 아이에겐 줬던 걸 빼앗기는 날벼락이었다는 것, 같은 요구를 선물로 바꾸는 프레임, 그리고 보상도 압박도 아닌 — 명령 대신 질문에 대하여.감정이 나의 것마흔에 인사이드아웃2를 보다 울었다. 순수한 기쁨은 이제 온전히 못 느끼지만, 윤슬이가 그걸 느낄 때 잃어버린 조각을 줍는 것 같았다. 좋은 감정만 골라 내가 될 수는 없다 — 뒤엉킨 그 감정들이 전부 내 것이고, 그 시간을 오롯이 느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감사한다.말하면 만들어 주는 사람딸에게 오늘 뭘 얻고 싶은지 생각하며 살자고 말해 놓고 멈칫했다. 나는 그렇게 산 적이 없다 — 늘 즉흥으로 떠오른 과제를 쫓았고, 오래 바란 건 말하면 뭐든 만들어 주는 프로그래머였다. 이제 방향을 정해야겠다 마음먹자 도리어 걸렸다. 방향이 없어서 가벼웠던 건 아닐까. 시키면 만드는 자는 결함이 아니라 원체였고, 나는 방향을 남에게 열어 두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정말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지자 도리어 회사가 방해처럼 느껴진다. 잠정 방향 하나를 적어 둔다 —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풀고, 거기서 돈을 번다.
dev · 2026.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