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면 만들어 주는 사람
오늘 뭘 얻고 싶어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하루, 뭘 얻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보내자.
말해 놓고 속으로 멈칫했다. 나는 그렇게 살았나.
아니었다. 그때그때 떠오른 과제를 쫓았을 뿐이다. 즉흥으로 세운 목표, 며칠 타오르다 식는 불. 정작 내가 오래 바란 건 따로 있었다 — 말하면 뭐든 만들어 주는 프로그래머.
말하면 만들어 준다
말하면 만들어 준다. 그게 내 자리였다. 누군가 무얼 해 달라 하면 나는 그걸 만들어 냈고, 요청이 곧 설계였다. 내 방향 같은 건 없어도 됐다. 내 앞엔 늘 누군가의 요청이 놓여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방향이 없었다. 목표라 불러 온 것들도 실은 그때그때 손에 잡힌 과제였을 뿐이다. 하나를 붙들고 타오르다, 다 타면 다음으로 옮겨 붙는 불.
이제는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갈지를.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방향을 열어 두고
그런데 방향을 정하기로 마음먹자, 도리어 이상한 것이 걸렸다.
나는 방향이 없어서 불행했던가. 돌아보면 아니었다. 방향이 없던 그 시절이 실은 가장 가벼웠다. 정해 둔 목적지가 없으니 어디로 튀어도 좋았고, 남의 요청이 곧 나의 오늘이었다. 나는 그 위에서 마음껏 몰입했다.
그러니 말하면 만들어 주는 자는 결함이 아니었다. 내 원체였다. (원체라는 말은 전에도 나를 부르려고 꺼내 쓴 적이 있다.) 방향이 없던 게 아니라 — 방향을 남에게 열어 두고 산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런데 요즘 나는 우울하다.
요즘의 나는 만들지 않는다. 상상 속에, 망상 속에 오래 머물다가, 현실과 맞닿는 순간 벽이 즐비하다.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몰입할 자리가 없으면 마음은 갈 곳을 잃는다.
돌아보면 나는 무얼 만들 때 가장 행복했다. 실무 한복판에서. 요청이 오면 그걸 형태로 바꾸던 그 몰두 속에서.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
이상한 건, 이제야 정말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그 자신감이 생기고 나니 도리어 회사가 방해처럼 느껴진다. 예전엔 몰입의 입구였던 요청들이, 이제는 나를 그 입구에서 밀어낸다.
잠정
그래서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 지금으로선 이렇게 적어 둔다.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풀고, 거기서 돈을 번다.
가만 보면 이것도 결국 말하면 만들어 주는 자의 변주다. 달라진 건 하나뿐이다. 이제는 누가 말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문제를 내가 먼저 찾아 나선다는 것.
이게 내 방향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손에 잡힌 과제인지는 아직 모른다. 방향을 정해야 하는지, 정하지 않은 채로 흘러가야 하는지도. 두 마음은 아직 내 안에 같이 산다.
그래도 딸에게는 계속 물을 것이다. 오늘 뭘 얻고 싶으냐고. 나는 여전히 내 답을 모르는 채로 — 그 물음만은 건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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