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는 전혀 귀엽지 않아요, 아빠
미디어 안 보던 집
우리 집은 미디어를 거의 안 본다. 어릴 적 딸을 씻기고 로션 바르려는데 도망가고 앙살 부려서 영상을 틀어줬더니, 영상 끊을 때 짜증이 너무 거셌다. 그래서 영상으로 달래는 법을 통째로 끊었다. 그 대신 주말 내내 엄마 아빠가 바짝 붙어 같이 놀았다.
지금도 주말 영화 시간 외엔 미디어를 잘 안 본다. 만화도 선별된 것들만 — 디즈니, 블루이, 옥토넛, 뽀로로. 그러다 티니핑, 시크릿쥬쥬도 전파됐지만 어쨌든 흐름은 유지된다. 게임도 안 시켜준다.
친구네 태블릿
문제는 친구네 가서다. 같이 있으면 허용이 우리 집 규칙이다. 그러다가 딸이 한 게임을 너무 즐기고 와서 집에서도 하고 싶다고 한다.
내 약점은 여기서 나온다. 기준과 정책을 명확히 안 해놨기 때문에 그날 기분이 내키면 스르륵 넘어간다. 몸이 아플 때, 힘들 때, 그 유혹은 잘 안 이긴다. 그래서 친구랑 하던 그 게임을 하나 허용했다.
광고가 분 단위로
문제는 광고가 거의 분 단위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끄면 되긴 한데, 몸이 힘들 때는 그조차 힘들다. 게다가 다 깔려 있다 보니 딸이 "이것도 해보고 싶어요" 한다. 집 꾸미기, 핸드폰 꾸미기, 건반 누르기, 테트리스 같은 거 — 겉보긴 다 멀쩡하다. 그런데 다 같은 식으로 광고가 넘쳐난다.
와, 이거 이렇게 돈 버는 거야? 앱러빈? 유니티 ads?

치가 떨려서 결심했다. 내가 만들어주기로.
이 뱀 게임은 전혀 재밌지가 않아요
딸이 좋아하던 뱀 게임부터 만들어 보여줬다.
"이게 아니에요 아빠. 이 뱀 게임은 전혀 재밌지가 않아요."
…그래.

그 고양이는 전혀 귀엽지 않아요
다음은 고양이 게임이었다. 시연했다.
"이 고양이는 전혀 귀엽지 않아요."
이쯤 되면 그럼 네가 찾아 와 하면 되는 자리인데, 나는 구글 이미지에서 고양이 사진을 수십 장 열고 윤슬이의 취향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 고양이는? 저 고양이는? 다 싫다고 한다.
그러다 윤슬이가 한 장에 멈췄다.
"이 고양이 귀여워요."
모찌 떡 모양인데 꼬치에 세 개가 꽂혀 있는 고양이였다. 귀엽긴 한데 한 박자 늦게 보면 어떻게 좀 무서운 형태. 그걸 게임에 넣었다. 흡족해한다.

디렉션은 계속된다
흡족 다음은 다음 디렉션이다.
"고양이 밥 줄 때는 사람이 나타나서 밥을 줘야 해요." "이 사람은 남자여서 싫어요. 고양이보다 덩치가 너무 커요. 어린 여자아이가 나오면 좋겠어요." "고양이 밥 주고 재우고 놀아주고 해야 돼요."
시키는 대로 다 넣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했더니 게임이 진짜로 훨씬 재밌어졌다.
디렉터가 된 딸
회사에서 나는 시키는 일을 받아 디렉션에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집에서 그 자리에 딸이 들어와 있다는 걸, 모찌 꼬치 고양이를 넣을 때쯤 깨달았다.
디렉터가 된 우리딸.

그래, 그렇게만 커다오. 미래에 네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AI들이 옆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만들어주길 바라면서. 그때까지 아빠는, 좀 더 디렉티드 빌더로 굴러가 있겠다.
언젠가는 회사에서 하던 이미지 생성 AI 연구를 집까지 끌고 와, ▶️ 너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로 만들어 본 적도 있다. 내가 아빠로서 보여 주고 싶은 건 그거다 — AI는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라 마음에 안 들면 고쳐 달라고 말하는 도구라는 것.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