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은 아직 일이 아니다
다시, 풍경부터
1편의 풍경을 다시 꺼낸다. 결과물이 쏟아진다. 슬랙·노션·대시보드에 산이 쌓인다. 양이 많고 속도가 빠르다.
이 풍경을 보면 "와, 일이 많이 되고 있구나"라고 말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재료와 일의 차이
목재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집이 지어진 게 아니다. 목재는 재료다. 누군가 그걸 잘라서, 다듬어서, 자기 설계도에 맞춰 끼워야 비로소 집이 된다.
결과물도 똑같다. AI가 만든 초안, 모델, 분석, 이미지 — 그 자체로는 재료다. 누군가의 작업 설계도에 들어가야 일이 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미래의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핵심은 — 결과물은 그 자체로 멈추는 한 일이 아니다.
AI가 끌어올린 양과 늘지 않는 일
AI 이후의 변화를 가장 정직하게 보면 이렇다.
- 생산 쪽 용량은 폭발했다.
- 수신 쪽 용량은 그대로다.
결과물 양이 10배가 되어도 일의 총량이 10배가 되지 않는다. 받아서 다음 작업 단위에 끼우는 수신 행위가 그만큼 늘어나야 하는데,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시간은 똑같다.
이게 결과물이 쌓이는 풍경의 정체다 — 생산 폭발 + 수신 정체.
병목의 위치
병목을 잘못 짚으면 잘못된 해법으로 간다.
흔히 "AI가 더 잘 만들면 된다", "프롬프트를 더 잘 짜면 된다"고 한다. 이건 생산 쪽 해법이다. 생산이 병목이 아닌데 생산을 더 빠르게 만들면, 쌓이는 산만 더 커진다.
병목은 수신에 있다. 받아서 자기 부품의 입력으로 끼우는 행위 — 그 행위의 시간과 사람이 모자란다.
일은 행위에 붙는 이름이다
이쯤 되면 "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조직 안에서 일을 한다는 건, 결과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다. 받는 쪽이 자기 작업 단위에 끼울 수 있게 만드는 모든 행위의 합이다. 생산은 그 안의 한 단계일 뿐이다.
결과물은 아직 일이 아니다. 받는 쪽에 도달해 쓰일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일이 된다.
누가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정의가 정확하면, 한 가지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 조직 안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손은 사실 결과물을 받아서 다시 쓰는 손이다.
그 손이 안 보이면, 조직은 자기가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를 잃는다. 가치 평가는 생산에 쏠리고, 수신은 무명이 되고, 결과물은 계속 쌓이는데 왜 일이 되지 않는지는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다음 편부터는 그 받는 자리의 모양을 본다. 받는 쪽이 매번 다르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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