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쪽의 모양은 매번 다르다
같은 결과물, 여러 손
회의실에서 같은 AI 분석 보고서를 본다.
디자이너에게는 비주얼 컨셉이 추출되어야 한다. 운영팀에게는 영향 받는 프로세스 목록이 빠져나와야 한다. 시니어 엔지니어에게는 기술 부채 신호가 보여야 한다. 마케팅에게는 고객 메시지의 후보가 보여야 한다.
같은 보고서를 보고 있지만 받는 쪽의 모양은 매번 다르다. 같은 입력에서 네 가지 다른 출력을 필요로 한다.
모양이 다른 게 정상이다
여기서 흔한 실수가 있다 — 받는 모양을 통일하면 되지 않나. 모든 부서가 같은 양식의 요약을 받으면 깨끗하지 않나.
깨끗하지 않다. 받는 쪽이 부품마다 다른 입력을 받는 게 자연스럽다. 디자이너는 시각 컨셉으로 일하고 엔지니어는 인터페이스 명세로 일한다. 같은 형식으로 둘 다 일하면 둘 다 일이 안 된다.
받는 모양이 다른 건 조직의 결함이 아니라 분업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통일이 답이 아니다.
그러면 누구의 모양이냐
여기서 진짜 질문이 떠오른다. 결과물 → 일 변환은 어느 쪽 모양을 기준으로 일어나야 하는가.
세 가지 후보가 있다.
- 출력 측의 모양 — AI/생산자가 자기 편의로 만든 형식
- 중간 표준의 모양 — "모두에게 적당히 맞는" 평균 양식
- 받는 쪽의 모양 — 사용자가 자기 부품에 끼울 수 있는 형식
답은 셋째다. 셋째여야 일이 된다. 다른 둘은 결과물이 다시 쌓이는 길이다.
출력 측의 모양은 답이 아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은 보통 생산자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모델이 출력하기 쉬운 형식, 평가하기 쉬운 형식. 거기에 받는 쪽의 부품 명세는 들어 있지 않다.
이걸 안 보고 "출력이 좋다"고 평가하면, 보기에는 좋은데 어디에도 끼울 수 없는 결과물이 쌓인다.
목소리 큰 사람 말대로 흘러간다
받는 쪽의 명세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으면, 결과물 → 일 변환은 무엇으로 흘러가는가.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의 모양으로 흘러간다.
회의실에서 누군가가 "이건 이렇게 가야 한다"고 단언하면, 그 사람의 모양이 기본값이 된다. 명세가 없는 자리에서 결정은 합리가 아니라 목소리 큰 쪽으로 기운다. 다른 받는 쪽은 자기 부품에 안 맞는 결과물을 받게 되고, 다시 손으로 변환해야 한다.
이건 조직에서 가장 뼈아픈 낭비다. 그 대가는 목소리 작은 사람들의 시간과 자존감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매번 다시 그려야 한다
해법은 단순하다. 통일도 아니고, 목소리도 아니다.
받는 쪽의 모양은 받는 사람이 직접 명세로 그린다. 출력 옆에 자기 부품의 입력 명세를 적어둔다. 그 명세에 맞춰 결과물을 변환한다.
이 그리기 작업이 역명세화의 출발점이다. 행위는 두 손으로 일어난다 — 받는 사람이 자기 모양을 그리는 손과, 결과물을 그 모양에 맞춰 다시 쓰는 손.
다음 편은 그리기 이전의 단계를 본다 — 그리려면 자기가 들고 있는 게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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