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있는 걸 모르면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그리기 전의 단계
4편에서 받는 쪽이 자기 모양을 명세로 그려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려면 한 단계 앞이 필요하다.
자기가 이미 들고 있는 게 무엇인가.
이걸 모르면 모양도 안 그려진다. 자기 부품의 입력 명세는 기존 자산 위에서 새 입력을 받기 위한 것이다. 기존이 보이지 않으면 새 것의 자리가 안 잡힌다.
무엇이 자산인가
자산을 좁게 보면 인벤토리는 금방 끝난다. 코드 저장소 / 문서 폴더 / 그게 다. 그런데 그렇게 좁게 보는 자리에서는 정작 협업이 안 된다.
자산은 더 넓다.
- 작성된 코드와 모델
- 정리된 문서와 결정
- 손에 익은 도구와 워크플로우
-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노하우
- 외부와의 관계와 채널
- 과거의 실패 기록
이 중 적힌 것이 한 줌이고, 적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인벤토리가 없는 풍경
대부분의 조직에서 자산 인벤토리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 있긴 한데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다.
"이거 해본 사람 누구지?", "이거 어디 적혀 있지?", "지난번에 비슷한 거 했던 것 같은데" — 이 질문들이 매일 떠도는 자리에는 인벤토리가 없다. 자산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굴러간다.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인벤토리 없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실패.
- 줄 수 없다 — 내가 들고 있는 걸 동료가 모른다. 동료가 새로 만들고 있는 게 사실 내가 이미 갖고 있던 거다. 자산이 두 번 만들어진다.
- 받을 수 없다 — 동료가 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모른다. 동료가 이미 풀어둔 문제를 내가 처음 푸는 사람처럼 다시 푼다.
협업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시작조차 안 된다. 협업은 자산이 보이는 자리에서만 시작된다.
인벤토리는 자산을 만든다
흥미로운 게 있다 — 인벤토리에 적는 행위가 자산을 새로 만든다.
머릿속에만 있는 노하우는 나 한 사람의 자산이다. 적힌 노하우는 조직의 자산이다. 적기 전의 노하우는 내가 떠나면 같이 떠난다. 적힌 노하우는 남는다.
그래서 인벤토리는 기록이 아니라 생산이다. 자산을 가용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세 자산이 만나는 자리
여기까지 오면 시리즈의 큰 형태가 보인다.
조직에서 결과물이 일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 역명세화 — 결과물 → 받는 쪽 모양으로 다시 쓰는 행위 (2편)
- 팀 프로토콜 — 받는 쪽이 자기 모양을 적어둔 명세 (4편)
- 자산 인벤토리 — 이미 들고 있는 걸 보이게 만든 목록 (이 편)
이 셋이 한 자리에서 만날 때 결과물은 비로소 일이 된다. 따로따로는 부족하다. 하나라도 빠지면 다시 결과물이 쌓이는 풍경으로 돌아간다.
다음 편부터는 어떻게 만드는가를 푼다. 역명세화의 절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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