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젤리 스퀴시가 우리 집에 도착한 날
어느 날 가방에서 나온 것
딸이 도장에서 돌아왔다. 가방을 풀더니 작은 비닐 하나를 내밀었다. 도복 사이에 끼어 와서 살짝 구겨져 있었다.
비닐을 뜯었더니 손바닥보다 작은 분홍색 덩어리들이 떨어졌다. 고양이 발이었다. 정확히는, 고양이 발 모양으로 빚어 놓은 말캉한 젤리 한 쌍. 누르면 한 박자 늦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누르고, 늦게 돌아오고, 또 누르고. 그러는 동안 딸은 내 옆에서 자기도 누르고 싶은 얼굴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거 뭐야." "냥젤리 스퀴시." "이걸 어디서." "포인트로 바꿔 왔어."
반년치 포인트
딸이 다니는 도장에는 포인트 상점이 있다. 발차기를 잘하면, 인사를 잘하면, 띠 매듭을 똑바로 매면, 포인트를 한 장씩 받는다. 반년쯤 모은 포인트로 상점에서 무언가를 골라 올 수 있다.
반년 동안 모은 점수를, 딸은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젤리 한 덩어리와 바꿔 왔다.
무용한 것
이걸 한참 만지작거렸다. 누르면 늦게 돌아오는 감촉이 자꾸 다음 번 누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정말이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면 자리만 차지할 것이고, 가방에 넣으면 다른 물건을 받칠 것도 아닌 채로 굴러다닐 것이다.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굴러나왔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무용한 것을 사 오는 것일까. 비난은 아니었다. 비난하기에는 딸의 얼굴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냥, 멈춤이었다. 반년치 포인트의 도착지가 이 분홍색 발바닥이라는 사실 앞에서 잠시 갈피를 잃은 멈춤.
그 멈춤이 거기서 끝났으면 이 글은 안 썼다.
방의 빈통 하나
딸은 그걸 방으로 가져갔다. 다 쓴 동그란 로션 통 하나를 들고 와서, 그 안에 분홍 발바닥 두 개를 고이 담아 두었다. 발바닥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한 봉지에 두 개가 들어 있던 모양이다.

사놓고도 일체 쓰지 않는다. 꺼내 누르지도 않고, 가방에 챙겨 가지도 않는다. 진짜로 보관만 한다. 언제 가지고 노냐고 물으면 흡족한 미소로 빈통을 꺼내, 그 안의 두 발바닥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자리에 둔다.
방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갔다. 빈통 속에 발바닥 두 개. 볼 때마다 입가가 살짝 풀렸다. 풀리고 나면 그래도 무용하다는 문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른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책임감으로 채워진 시간을 하루 단위로 굴리고 있는데 — 그 시간 어느 자락에도 들어맞지 않는 분홍색 두 덩어리가 방 한쪽에 있다.
회사에 가지고 가지는 않았다. 가지고 가서 책상 위에 올려둘 종류의 물건이 아니었다. 다만 그 감각만은 회사까지 따라왔다. 점심 무렵, 회의 사이 잠깐, 옆자리 사람이 말을 걸어올 때, 그 감각을 슬쩍 꺼내고 싶어졌다 — 우리 딸이 태권도에서 정말 쓸모없는 걸 사 왔어요. 누가 더 물으면 반년치 포인트로 바꿔 왔다고 답했다. 그 답을 하루에 서너 번씩 했다.
이거 좀 보세요, 무용하지 않아요? 물건을 들고 가서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이야깃거리로 꺼내 놓았다. 어른들의 삶과 너무 다른 딸의 시각이 재미있어서 누군가에게 한 번씩 공유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서 무용하다는 단어가 며칠 동안 내 입에서 굴렀다. 그게 어떤 어휘인지 그 전엔 잘 몰랐다.
어느 저녁, 아내가 먼저
어느 저녁이었다.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먼저 꺼냈다.
"우리 가족, 왜 만나주는걸까."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가족을 만나면 받는 게 많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동네 정보, 살림하는 법, 가끔은 음식. 반대로 그쪽에서 우리에게 뭘 묻는 자리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말 뒤에 우리는 무용하다는 단어를 한참 굴렸다. 며칠 동안 내가 회사에서 굴리던 그 단어가, 어느새 식탁 위로 굴러와 있었다.
닮았네, 우리
그러다 두 갈래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어, 근데 — 그쪽에서 보면 우리가 그런 거 아닌가.
소리내어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분명히 입 안에서 한 번 굴렀다. 굴러서, 식탁 모서리에 살짝 부딪혔다.
그 말을 아내한테 했다. 아내는 한 번 웃고, "닮았네, 우리." 무엇을 닮았다고 말하는 건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발 모양을 닮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딸은 그 옆에서 자기 그림 노트를 펴 놓고, 또 1+1을 풀고 있었다. 천 번쯤 풀어 본 식을 또 한 번 천천히 쓰면서.

그래서 이름을 붙였다
설거지를 하다가 거품 사이로 그 말이 한 번 더 굴러나왔다. 이번에는 꽤 또렷하게.
우리는 냥젤리 스퀴시 같은 가족이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이름이 먼저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딸이 반년치 포인트를 모아 분홍색 발바닥 하나와 바꿔 오는 그 거래의 감각이, 사실은 이 집에서 꽤 오래 통용되어 온 환율이었다는 것을. 단지 이름이 없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오래 전에 본 드라마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그 줄이 왜 이 저녁의 식탁까지 따라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따라온 김에 옆자리에 앉혀 두기로 한다. (한참 뒤에야, 이 무용함이 사실은 풍요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적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그쪽에서 보면 우리도 그런 거 아닌가 하는 그 줄. 그 줄은 식탁 모서리에 부딪혔을 뿐 아직 어디로도 안 굴러갔다.
다음 편에서, 그 줄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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