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어디에 고이나
답이 헐값이 됐다
안경 하나로 수능을 풀었더니 1등급이 나왔다는 글을 봤다.
댓글은 시끄러웠다. 이제 지능 같은 건 필요 없는 세상이라고. 아니, 계산기 쓴다고 머리 안 굴리던가, 새 지능이 생길 거라고. 나는 그 싸움엔 마음이 안 갔다. 다른 데가 걸렸다.
답이 너무 쉽게 나와버린다는 것.
고일 새가 없다
옛날엔 안 그랬다. 뭘 만들든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어딘가 물이 고였다. 사람들은 그 고인 물에서 먹고살았다. 번역을 잘하는 자리, 정리를 잘하는 자리, 답을 아는 자리. 흐름이 느려서, 어딘가는 늘 고여 있었다.
이제는 빠르다. 묻자마자 나오고, 나오자마자 다음으로 넘어간다. 고일 새가 없다. 중간에 만들어진 것들은 — 어제까지 누군가의 밥벌이였대도 — 그냥 흘러가는 부산물이 된다.
언젠가 아는 누나와 이야기하다, 한 문장이 내 입에서 굴러나왔다. 결과 빼곤 다 부산물이라고.
누나는 스타트업에 AI를 어떻게 들일지 묻고 있었고, 우리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바뀔지를 한참 떠들던 참이었다. 그러다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 이제 일이란, 대화로 결정까지 짓고 나면 그 사이는 AI가 알아서 해 가져오는 것. 기획서, 피그마, 명세서. 우리가 일을 잘하려고 만들던 그 모든 게, 결과만 남으면 그뿐인 부산물이 되는 것.
말하면서 좀 신났다. 아는 사람이 된 기분 — 내가 미래를 그리고 예측하다니. 그런데 그 들뜸이 어디서 왔나 보니, 똑똑해서가 아니었다. 제일 오래 혼자 붙들고 있던 걸, 누가 마침 물어봐 준 것뿐이었다.
신나서 한 말이었는데, 요즘 자꾸 그게 맞는 것 같다. 채팅창에 던져 결과가 툭 나오면, 거기까지 온 과정은 다 부산물이다. 그런데 — 그 부산물 없이는, 그 좋은 결과도 안 나오더라.
그래서 자꾸 묻게 된다. 그럼 이제 물은 어디에 고이나.
무서웠던 건 그게 아니었다
처음엔 돈 얘기인 줄 알았다. 어디에 고여야 먹고사나. 며칠을 굴리니 무섭고, 조금 우울했다. 아무리 봐도 고일 데가 안 보여서.
그런데 정작 무서웠던 건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윤슬이다. 이 빠른 물살 위에서, 나는 딸에게 뭘 쥐여줄 수 있나. 어디로 가라고 말해 줄 수 있나. 답을 아는 자리가 죄다 헐값이 된 세상에서, 내가 물려줄 게 남아 있기는 한가.
딸에게는, 그 다음을
얼마 전 나는 수요에서 시작하라는 걸 겨우 배웠다. 백지부터 그리던 버릇을 내려놓고,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묻기로 했다고.
그런데 딸에게는, 그 다음을 말해 주고 싶다.
수요가 생기는 자리를 좇지는 말라고. 좇아서 찾은 자리는 남들도 다 본다. 보이는 우물엔 이미 줄이 서 있고, 그나마도 곧 메워진다. 대신 — 네가 정말 좋아하는 걸 끝까지 파라. 그러다 보면 아무도 안 판 데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처음으로 네가 우물을 판다. 찾은 수요가 아니라, 네가 만든 수요.
《제로 투 원》의 피터 틸은 남들과 경쟁하지 말라고 했다. 보이는 시장에서 다 같이 싸우면 이윤이 닳아 사라진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같은 말을 하고 싶은 이유는 좀 다르다. 이기려고가 아니다. 좋아서 파야만 닿는 데가 따로 있어서다.
그 너머
왜 하필 좋아하는 일이어야 하냐면.
AI는 데이터가 있는 곳을 이미 다 메웠다. 누가 해놓은 게 있는 자리는, 사람보다 빠르고 싸게 한다. 그러니 남은 건 아직 아무도 안 해본 그 너머다. 거기로 가려면 먼저 해온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똑바로 봐야 한다. 그 위에서, 한 발 더.
그 한 발을 떼게 하는 건 호기심뿐이다. 그 너머가 궁금할 이유가, 너 말고는 아무에게도 없으니까. 시키는 사람도, 보상도, 데이터도 없는 자리. 좋아서 못 견디는 마음만이 거기까지 발을 끈다.
파인만의 흔들리는 접시 이야기를 윤슬에게 해주고 싶다. 카페테리아에서 누가 던진 접시가 도는 걸, 재미로 식 세워 풀던 장난이 — 끝내 노벨상으로 갔다는 것. 쓸데없어 보이던 그 장난이.
그래서 무엇으로 사나
여기까지 적고 나니, 더 큰 게 남는다.
우리가 겪던 문제의 대부분은 곧 풀려 있을 것이다. 정말 문제랄 게 안 남으면, 사람은 무엇을 할까. 돈을 벌어야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 안 벌어도 되는, 공급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그 살아감에서, 수요는 또 어디서 생길까.
나도 모른다. 무섭고, 가끔 우울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딸에게 쥐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답을 아는 법이 아니라 — 좋아하는 걸 끝까지 궁금해하는 마음. 문제가 다 풀린 세상에서도, 그 마음만은 새 물줄기를 낼 테니까.
물이 어디에 고이냐고 물었는데, 답은 반대편에 있었다. 고인 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 좋아서 파다 보면, 거기 물이 고이는 거였다.
아직 길은 모른다. 그래도 손 놓고 있진 않다.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딸에게 줄 그 한 가지를 매일 다듬는 중이라고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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