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하고 귀여운
다른 가족과의 저녁
어느 주말, 다른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동네 이야기, 살림 이야기. 가끔은 음식까지 받아 들고 돌아왔다. 차 안에서 아이는 잠들었고, 두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다.
받기만 한 자리
돌아오는 길 어느 신호에서, 그 자리가 받기만 한 자리였다는 걸 알아챘다. 받은 게 많다. 줄 수 있는 게 무엇이었을지는, 가는 길에도 오는 길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쪽에서 우리에게 뭘 묻는 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묻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서일 수도 있고, 물을 만한 게 없어서일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아내가 먼저 꺼냈다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았을 때, 아내가 먼저 꺼냈다.
우리 가족, 왜 만나주는걸까.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한 마디 더 보태지 않고, 둘이 한참 같이 굴렸다.

며칠 동안 굴리던 단어
그동안 회사에서 며칠 굴리던 단어가 있었다. 무용하다. 분홍색 발바닥 한 쌍을 두고 옆자리 사람들에게 하루에 서너 번씩 던지던 그 단어. 아내가 식탁에서 왜 만나주는걸까를 꺼낸 자리에, 그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와 앉았다.
그쪽에서 보면, 우리
두 갈래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무용하다는 어휘를 며칠 굴리던 사람이, 이번에는 같은 어휘로 자기 가족의 자리를 다시 보고 있었다. 그쪽에서 보면 우리도 그런 거 아닌가. 발 모양을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자리를 닮았다는 뜻이다.
무해하고 귀여운
마지막 한 줄은 어디서 굴러나왔는지 모르겠다. 둘 사이에서 한 번 굴러나오고, 둘이 한 번 더 굴렸다.
정말 쓸모없고 재미도 없지만, 보고 있자니 무해하고 귀여운 느낌.
식탁 위에는 우리는 냥젤리 스퀴시 같은 가족이다라는 이름이 거의 와 있었다 — 다만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며칠이 더 필요했다. 다음 편은 그 며칠 동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 — 나 — 의 자리에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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