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가는 편
여기는 회상편이다. 시간을 거슬러 — 회의도, schema도, 교차 검증도 없던 자리로. 다섯 줄을 매일 들고 다니던 그 막막했던 시기의 안쪽으로.
그 자리는 밖에서 보면 평범한 회의실이었다. 안에서 보면 다른 것이었다.
통증이 다 똑같이 느껴졌다
그 시기의 통증은 다 똑같이 느껴졌다. 큰 덩어리였다.
"팀이 안 굴러간다." "내가 부족한가." "이 일이 안 맞나."
이 세 문장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뭉뚱그려졌다. 어디를 찔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다 아팠다. 일은 일대로 안 풀렸고, 자기 비난은 자기 비난대로 깊어졌고, 직무 자체에 대한 의심은 그 위에 또 한 겹.
세 문장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문제다. 첫 문장은 시스템의 문제다. 의사결정 구조, 권한 분포, 정보 흐름. 두 번째는 기술의 문제다. 안 해본 일이니까 익혀야 하는 영역. 세 번째는 적합도의 문제다. 다른 자리가 더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
세 문장이 분리되어 있으면 각각 다르게 다룰 수 있다. 그런데 분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모든 게 자기 능력의 문제로 흡수된다. 그게 가장 무거운 부분이었다.
조세호의 자리
자기 모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거 아시죠?" "아 그거요. 네 네."
(사실은 모른다.)
분명히 모르는 건데, 그 자리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게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모름을 인정하는 순간 —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1편에서 말한 킹의 자리다. 안에서는 떨고 있고, 옆에서는 결정 내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 간격을 자기가 메우려 한다.
그래서 모르는 채로 끄덕였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검색했다. 그 사이클이 매일 반복됐다. 그 사이클 자체가 능력치를 깎았다. 옆자리 사람은 보지 못하는 종류의 데미지였다.
킹 엔진의 안쪽 풍경
결정을 내릴 때마다 안에서 심장 박동이 들렸다. 1편에서 말한 킹 엔진. 옆 조직 사람에게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안에서는 그 결정마다 능력치가 한 칸씩 깎이는 감각이 있었다.
깎이는 이유는 결정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었다.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 — 그 사실이 깎았다. 결정이 옳든 그르든, 다음 결정 앞에서 나는 또 모르고 내릴 것이다라는 예감이 자기 비난을 다음 날로 옮겨놨다.
그 시기에 깎인 건 능력이 아니라 능력에 대한 신뢰였다. 능력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신뢰가 깎이면 — 같은 능력을 가지고 더 위축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위축이 또 다른 모름을 만들었다. 자기 비난의 회로는 이렇게 복리로 깎였다.
분리되는 순간
언제부터 풀렸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 통증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아, 이건 의사결정 구조 문제구나." "이건 커뮤니케이션 포맷 문제구나." "이건 위 시계가 멈춰 있어서 그런 거구나."
같은 말이 머릿속에서 점차 다른 줄로 정리됐다. 큰 덩어리가 작은 문제들로 갈라졌다. 갈라진 문제는 풀 수 있는 문제였다.
통증이 문제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 전까지는 견디는 모드다. 그 다음부터는 진단 모드다. 견디기만 하면 닳기만 한다. 진단되면 풀린다.
그 순간이 와서야 알았다. 내가 그 막막한 자리에서 한 일이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걸. 매일 답답해하면서 — 시나리오를 굴리고, 회의에 들어가고, 다시 모르는 채로 자리에 돌아오던 — 그 행위가 데이터를 쌓고 있었다는 걸. 어휘가 없었을 뿐, 어휘 없는 어휘를 매일 쌓고 있었다. 분리는 그 누적 위에서 일어났다.
다음 편 호출
그러던 어느 날 회의실에서 문득 옆자리 사람이 — 평소엔 자신 있어 보이던 그 사람이 — 살짝 망설이는 것을 봤다. 그 망설임이 익숙했다. 매일 내 안에서 보던 그 망설임.
그게 다음 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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