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면 대화로 끝났을 일
한 사람이라면 한 줄짜리 대화로 끝났을 일이었다. 이거 이렇게 하자 — 응 좋아.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우리 팀과 옆 팀 사이에 놓이는 순간 — 한 줄로는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며칠 뒤에 다시 흔들렸고, 흔들리고 나서야 우리가 같은 말로 다른 걸 이해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1인 ↔ 1인에는 schema가 필요 없다
개발자라면 한 번쯤 본 풍경이 있다. 두 서비스가 통신할 때 — schema를 맞추지 않으면 통신은 그 순간엔 되는 것 같지만 데이터가 어긋난다. 그래서 우리는 schema를 정의하고, protocol을 맞추고, 통신 방식을 합의한다. 그게 기본기다.
1인이 코드를 짤 땐 schema가 필요 없다. 머릿속에서 받는 쪽도 나, 보내는 쪽도 나니까. 두 서비스로 갈라지는 순간 schema가 필요해진다.
조직 간 대화도 똑같은 구조였다. 1인 ↔ 1인이면 대화로 끝난다. 조직 ↔ 조직이 되는 순간 — 같은 단어가 다르게 해석되고, 같은 약속이 다르게 기록되고, 같은 결정이 다르게 굳는다. input과 output을 정의하지 않으면 통신이 안 됐다.
기획서와 명세서는 그 schema였다
그 깨달음이 도착하고 나서야 — 기획서와 명세서가 왜 존재하는지 다시 보였다. 그것들은 형식주의가 아니라 조직 간 통신의 schema였다. input이 무엇인지, output이 무엇인지, 어떤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어디까지가 합의된 부분인지를 명문화하는 도구.
문제는 — 기존의 기획서·명세서 방식은 너무 무거웠다. 한 장을 만드는 데 며칠이 걸렸고, 그 며칠 사이에 세계는 또 패치되어 있었다. 무거운 schema는 합의에 도달하는 시간 자체가 합의의 적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더 가볍고, 더 빠르고, AI 시대답게 대화 가능한 형식. 입력과 출력만 정확하면 — 나머지는 빠르게 채울 수 있는 schema. 그것이 어떤 모양인지는 아직도 매주 다시 시도되고 있다.
Align 비용
큰 조직에서 진짜 비용은 align 비용이었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의 결정적 차이가 그것이다. 5명이 한 방에 있을 땐 align 비용이 거의 0이다. 한 사람 머리에 다 들어가거나, 30분 대화로 끝난다. 600명 조직에선 같은 결정이 — 사전 탐색, 디렉터 싱크, 리더 회의, 킥오프 — 일주일이 걸린다. 같은 결정이 조직 크기에 따라 200배 비싸다.
이걸 진짜 잘하는 큰 조직은 위임 구조로 그 비용을 분산시킨다. 모든 결정이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어디까지가 누구의 결정 영역인지를 미리 그어둔다. 그게 안 되는 큰 조직은 모든 결정이 위로 흐르고, 위 시계가 항상 병목이 된다.
스키마는 그 비용을 줄이는 도구였다. 위임 구조가 잘 깔린 조직은 — 정확히 말하면 위임된 결정 권한마다 schema가 잘 정의된 조직은 — 같은 결정을 5명 조직처럼 빠르게 굴린다.
목소리 큰 사람의 봉합
schema가 깔리고 나서 한 가지가 사라졌다. 목소리 큰 사람이 결정의 주체가 되는 일.
input과 output이 정의되어 있으면 —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맞춰진 사람들이 결정한다. "그쪽이 이걸 할 수 있다고 하셨죠"가 "회의에서 가장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의 안"보다 강해진다. 분석이 종지부로 변환되는 경로가 schema 위에 깔린다.
물론 schema가 모든 걸 해결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회의는 필요했고, 사전 싱크는 필요했고, 위 시계는 통제 못 했다. 그래도 덜 아팠다. 목소리가 합리를 대신하는 자리가 줄었고, 그 자리에 맞춰진 input/output이 들어섰다.
다음 편 호출
여기까지 쓰면 시리즈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분석 → 종지부 설계 → schema → 봉합. 단계대로.
사실은 그 사이에 — 분석이 안 통하고, schema가 없고, 목소리 큰 사람한테 끌려다니던 그 막막함의 한복판에서 — 가장 길었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의 안쪽 풍경이 다음 편이다.
회상편이다.
아직 포스트잇이 없어요. 첫 자리를 남겨보세요.